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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Mar 23. 2023

[Movie] 남편이 우울증에 걸려서

우울증 환자가 보고 읽은 것들

 우울증에 걸린 남편과, 그를 돌보는 아내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본 영화 '남편이 우울증에 걸려서'.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는 남편 '미키오'는 어느 날 자신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주변에 고백하자 듣는 이야기들은 '지금 같은 시기에는 누구나 힘들고 우울하다'는 직장 상사의 핀잔과 '너는 가장이니까 힘을 내서 우울증을 극복해야지'라는 도움이 되지 않는 형의 조언들 뿐. 만화를 그리는 아내 '하루'는 그런 남편을 응원하고 싶지만 자신도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일이 처음이라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일이 서툴기만 하다.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심료 내과(우리나라의 정신건강의학과에 해당하는 일본의 진료과)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조금이 시간이 흐르고 극적으로 증상이 호전되어 삶의 활기를 찾은 것도 잠시, 우울증의 늪을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시 시작된 우울증의 증상들. 처음에는 심한 우울감과 불면증이 찾아왔다. 일 때문에 이삼일 정도만 수면이 부족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는데 한 달 이상 지속되는 불면증은 사람을 공황 직전의 상태까지 몰고 간다. 기나긴 불면의 밤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온 증상은 과수면. 아침 먹고 아침잠, 점심 먹고 오후잠, 저녁 먹고 밤잠. 하루 종일 자도 자도 피곤하기만 하다. 다른 일을 시작할 의욕도, 에너지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키오를 힘들게 하는 일은 심한 죄책감이다. 결혼할 당시 '당신은 하고 싶은 만화를 그려, 다른 일은 내가 할게'라고 할 정도로 아내를 배려하던 그에게 우울증 때문에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아내를 에너지를 간병에 소비하게 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기만 한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이 부분이 우울증 환자들을 감적적으로 가장 소모시키는 증상이지만, 주변인이 보기에는 의아할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에 일부러 걸린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하던 일을 일부 내려놓거나 멈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왜 모두 자기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까. 환자와 보호자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이 지점에서 적절한 위로와 응원이 우울증 환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



 시간이 흘러도 우울증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생계를 위해 하루는 만화가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로의 일도 시작한다. 원하던 만화 대신 납기를 맞추어야 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도 예민해져 가고 결국은 날 선 말을 미키오에게 내뱉게 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부부간의 갈등 상황이지만 미키오는 이를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이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없구나', '나는 이 사람에게 방해만 되는 사람이구나'. 조용히 욕실로 들어간 미키오는 샤워 타월을 이용해 자살을 기도하고, 다행히 작업을 마친 하루에 의해 구조가 된다.


아까 말이야, 당신이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런데도 하루 씨에게 성가시게 굴기나 하고, 그런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어.  나 따위는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고 어떨 때는 여기 있다는 게 견딜 수가 없어. 하루 씨 나... 여기 있어도 될까?


 우울증 환자에게 절망은 다양한 이유로 찾아온다. 우울증이 만성화되고 호전되지 않아서. 일을 할 수 없어서. 주변에게 폐를 끼쳐서. 죄책감이 들어서. 외로워서. 그리고 철학자 키르케고르의 말처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의 가족들에 대해 생각했다. 가끔은 나를 힘들게 하지만 결국 궁극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었다. 일본어 원제에서 남편으로 번역된 단어는 츠레(つれ [連れ]), 사전적으로는 동반자를 일컫는 말이다. 남편보다는 직접 남편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인 '당신'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 남편으로 번역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우울증을 함께 이겨내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원제를 더 잘 살렸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여담으로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사카이 마사토와 미야자키 아오이는 일본의 사극 '아츠히메'에서 부부로서 한 번 연기를 한 인연이 있는 사이이다. (드라마에서도 남편은 약간의 지적 장애가 있고, 아내는 그런 남편을 돌보아 주는 역할을 한다) 드라마를 즐겁게 보았던 나에게는 일본을 대표하는 두 배우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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