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누구나 살아가면서 부끄러운 실수를 하고, 침대에 누워서 그 장면을 생각하면서 이불킥을 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때 이렇게 말할 걸, 거절했어도 되는데 바보같이 아무 말도 못 했네, 이런 대접을 받았으면 안 됬었는데 나는 왜 화를 못 내고 그냥 넘어갔을까. 그리고 유난히 이런 반추를 잘하는 사람, 바로 나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는데 나는 왜 이리도 예전 기억을 떨쳐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되뇌고 또 되뇌는 걸까. 어릴 때부터 안 좋았던 기억은 참으로 오래도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어쩌면 마흔 살이 가까워 오도록 계속된 반추 사고가 혹시 우울증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실수한 일이 있다면 다음에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반추를 해 보는 일은 중요하다. 반추를 통해서 실수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고, 다음번에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떠올려 봄으로서 다음 실수를 할 가능성을 줄여준다. 이렇게 보면 반추는 우리는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기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추의 내용이 중요한 실수에 국한되지 않고 온갖 상황에 적용되어 그 내용이 방대해지거나, 반추해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쓸모없는 내용이라면? 과거의 스트레스 상확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가랑비에 옷 젖듯이 반추의 늪에 점점 빠져 들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마음이 지쳐간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긴 한다. 학창 시절에 저지를 실수들은 가끔씩 떠오르기도 하지만 기억에 오래 사로잡히지 않고 금방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수개월 전의 기억들은 쉽게 잊히지가 않는다. 강렬했던 기억은 더 오래 남아서 머릿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돌고 돌며 생각이 난다. 내가 또 반추를 한다는 자각이 들면 또 자괴감이 든다. 행복하고 즐겁고 희망찬 생각만 하면서 살 수는 없겠지만 '주로'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산다는 기분은 어떨까.
최신 뇌 연구에 의하면 우리 뇌 속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반추/후회를 만드는 부분과 미래를 걱정하는 부분이 비교적 일치한다고 한다. 이 둘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요 사고이자 증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뇌 연구가 이러한들 어찌할 것인가. 뇌를 열어서 이 부분을 살짝 지져버리거나 덜어낼 수도 없는 일이다.
반추 사고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찾아본 두 가지 방법이 마음 챙김과 메타인지치료이다. 둘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데 우선 마음 챙김에 대해 알아보자. (이 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라 틀린 내용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 챙김의 기본 이론은 1) 자신을 비판단적으로 보기 2)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현재에 머물기 3) 바뀌지 않는 현실을 수용하기. 음.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알아본 마음 챙김은 주로 명상을 이용하는데 눈을 감고 나의 호흡이나 신체 감각에 집중함으로써 여러 부정적인 사고들로부터 벗어나 마음의 평정을 얻는 법이다. 하지만 명상을 해 보면 알겠지만 눈을 감고 있으면 잡스런 생각이 더 들면 더 들지 덜 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끊임없이 이로부터 벗어나려는 마음의 수련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반추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방법이다.
메타인지 치료는 마음 챙김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마음 챙김에서는 연습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사고와 거리 두기를 한다면 메타인지 치료는 부정적 사고가 자동적으로 떠오르고 곱씹는다는 그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에서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가정하자. 마음 챙김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부정적인 인지행동을 교정하는데 목표를 둔다. 그러나 메타인지 치료는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 때문에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 자체가 우울증을 유발하고 악화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이 자동적으로 떠오르지 않도록 만들어야 우울증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시각이다. 마음 챙김은 여러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메타인지 치료를 다룬 책이나 전문기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메타인지 치료에 관한 책 (생각이 많아 우울한 걸까, 우울해서 생각이 많은 걸까?, 피아 칼리슨, 출판사 필름)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나의 상황에 잘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는 말하지 않지만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과거를 반추한다. 과거에 내가 했던 실수들이 생각나서 괴로울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그런 생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을 컨트롤할 수 없는 현실이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셀프 치료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사서 읽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