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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땅꾸신발 May 02. 2023

삶의 궤도를 잠시 벗어나는 일에 관하여

비정신과 의사의 우울증 투병기

 처음 우울증에 걸리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하고, 한 번은 거의 그만두기 직전까지 갔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원래 하던 일을 유지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은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지면서 일을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집에 와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릇에 가득 찬 물이 찰랑거리는 것처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의 양이 나의 그릇을 거의 가득 채운 상태로 살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는, 그리고 우울증 치료를 받는 와중에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 나갔었다. 그러니 이런 느낌은 일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내의 내구성이,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크기가 작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직장은 유지하고 있지만 일의 내용이나 마음 상태는 이전과는 다르다. 이전보다 능력치가 떨어졌음이 느껴지고 그럴 때마다 절대 무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떠올리면서 조금은 힘을 빼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나를 챙겼다가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질까 봐 억지로 다시 일을 시작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조기 은퇴에 대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과 휴식을 원하는 마음이 줄다리기를 하는 와중에 결국은 또 출근길을 나선다.


 우울증을  겪게 되면 이전과는 다른 삶의 형태를 마주하게 된다. 일을 완전히 그만두고 쉬어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스트레스가 덜한  직장으로 이직을 하기도 한다. 일 뿐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하던 일들을 수행하는데도 장애가 생긴다. 아이가 있다면  아이 돌보기가 힘들어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거나 심하면 기본적인 식사나 위생을 유지하는 데에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규정하는 언어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우울증에 대한 수용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사람들은 그저 조금은 다른 생활, 나를 좀 더 챙기는 삶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발병 전까지 열심히 꿈을 좇던 사람에게는 이것을 '실패'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까지 계획했던 일들은 연기되거나 혹은 폐기되어야 하고 새로운 미래는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우울증 치료가 장기화되는 경우 이전의 삶으로 완전히 복귀하지 못하고 줄어든 나의 능력치에 적응해서 살아가야만 한다.


우울증에 걸린 정신과 의사 린다 개스크는 '당신의 특별할 우울'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게 정말 필요했던 약은, 운명이라 생각했던 길에서 완전히 탈선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후에 깨달았지만, 삶이라는 열차가 탈선하여 내달리는 그 혼돈의 순간에는 때로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앞으로 무엇을 바꾸면서 알아야 할지, 그리고 자신을 옥죄는 자신과 남들의 기대는 온당한 것인지, 너무 늦기 전에 생각해 보라는 메시지다.


 증상이 심할 때 나는 하루 종일 이전처럼 일을 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나에 대한 자괴감과 앞으로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함에 시달렸다. 조금 회복된 후에는 그런 생각들 자체가 우울증의 증상임을 깨닫고 나쁜 생각에 집착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조금은 바뀌게 된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 내가 목표로 했던 일들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욕심을 버리는 일은 쉽지는 않지만 그것이 내가 더 자유로워지는 길일 것이다. 이전과 달라진 나의 삶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라 단지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이라고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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