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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백 Nov 21. 2021

20대에서 30대로

벌써요?!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나는 침묵한다. 내 나이가 부끄럽다거나, 좀 더 어려 보이고 싶거나, 좀 더 성숙해 보이고 싶기 때문은 아니다. (아예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다.) 슬슬 계산을 한 번 해봐야 헷갈리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고작 이 나이에 무슨 유세냐 싶긴 한데, 사실이 그런 건 어쩔 수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해보아도 다들 비슷한 심정인 듯 싶으니 추측컨데 나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더 이상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 터치 한 번으로 우리는 지구 반대편을 바라보고 타인의 삶과 죽음을 구경한다. 경험이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이를 말할 때 손가락을 꼽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내게 무언가의 압박을 준다. 시간이 마냥 성숙을 보장하지는 않으니 스스로 나이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삶의 그럴듯한 청사진 하나쯤은 완성해놨어야 한다는, 그런.


내 10대의 막바지에서 나는 20대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하루는 멋진 삶일 것 같다가도, 그다음 날은 미래가 너무 끔찍하게 다가왔다. 뉴스에서 말하는 젊은 사업가들의 이야기도, 방황하는 구직 세대의 이야기도 너무 멀거나 너무 가까웠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는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평범의 기준선에 어영부영 발 디디는 것에 성공했다 생각하고 싶다.


10대와 20대

10대의 나는 줄곧 오래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20대의 도입에서 한 번 크게, 온 힘을 다해 높이뛰기를 해야 하는.

그렇기에 20대의 초입에서 나는 꽤 오래 허탈했다. 높이뛰기 한 번의 끝은 그냥 다시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나는 왜 그렇게 오래 달렸나, 하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이 그렇듯 대학에 대한 목표는 있었으나 삶에 대한 목표는 딱히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좋아하는 게임 좀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좀 만나다가, 남들 다 그렇듯 집 사고 차 사고 아마도 결혼을 하겠거니... 정도의 막연함만 있었던 셈이다.

그리곤 뭐 그럭저럭 미적지근한 온도로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일이라는 것의 맥락도 약간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가, 아니구나 싶기를 반복하고......


그렇다면 슬슬 20대의 끝자락에 서기 시작한 나는 어떤 30대를 맞이해야 할까.


20대와 30대는?

20대까지는 해석되는 삶이었다. 어느 한 곳에 길게 몸 담지 않고, 계속 배우고, 익숙해지면 바뀌는. 사람들은 나를 통해서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을 가늠하고 싶어 하고, 가끔 나를 통해 이 새로운 세대가 과연 '글러먹지는' 않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비뚤게 말하긴 했지만 아무튼 그건 관심이 있다는 소리고, 신입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다. 원래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법이니까.

대학 졸업도, 취직도 점차 늦어지는 요즘 시대에 사회의 주층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30대부터가 시작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혹은 그랬으면 좋겠다, 하는 희망사항일 수도 있고.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다. 20대 때 하던 고민들은 대체로 30대가 되었을 때에는 많이 희석되기 마련인데, 그건 금전적 사정이 좋아지기 때문이라고. 한창 골머리 앓던 고민이 있었는데, 그 문구를 발견하곤 어쩐지 위로가 되기도 했다. 끌어안은 고민들은 대체로 그 해결방법이 거창하지 않고, 사실 방도가 없다 생각했던 문제들도 대체로 아주 현실적이고 해결 가능한 지점에부터 비롯된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어쩌면 크게 틀린 이야기도 아니지 않으려나 싶다. 어찌 되었건 21세기의 많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 우울할 때 위장에 나트륨을 쏟아부으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가 싶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려 말했지만, 그래서 내가 내 30대에게 바라는 건 안정감이다. 물론 사람 사는 일에 불확실성이라는 게 없을 수야 없다지만, 그럼에도 내 인생을 아주 긴 선으로 펼쳐보았을 때에는 자잘한 여진을 빼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기를 바란다.

그걸 위해선 무엇보다도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옳겠다. 아직 원하는 방향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긴 하다. 집을 사고 싶다, 정도의 욕심은 있지만 그게 삶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니 마지막 남은 20대에는 아무거나 얕고 넓게, 소위 말하는 '간잽이'를 해봐야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높이 뛰기를 하는 대신, 걸음걸음이 자잘한 점프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향성까진 아직 모르겠어도, 적어도 내 삶의 박자는 그 정도로 느슨한 것이 맞는 것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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