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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May 10. 2024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

이렇게 살아도 되네 <15편>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탐색하며 꼭꼭 닫혀 있던 내 안의 보물단지를 조금씩 풀어내며

 10년을 그렇게 살았다. 

 그동안 아이가 자라고 남편은 마당에 화실을 지었다. 

각자의 꿈은 조금씩 또렷해졌다.


 하지만 초상화 수입은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다.  IMF가 닥치자 비싼 기름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우리는 기름보일러 방을 포기하고 별채에 남겨둔 군불방으로 잠자리를 옮겼다. 

 네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작은 방은 한 아궁이 가득 불을 지피면 밤새도록 방바닥이 뜨끈뜨끈했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마당에 인접한 뒷산에 슬렁슬렁 올라갔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른 참나무 가지를 한 아름 주워 와서 군불을 지폈다.

 가끔은 트럭을 타고 인근의 임도를 다니며 한차 가득 땔감을 구해오기도 했다. 마당에 옮겨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 잘 재어 놓으면 한겨울이 푸근했다.

손님이 와도 작은 방에 꼭꼭 붙어서 같이 잤다.


싱크대에는 찬물만 나왔다. 대구에서 쓰던 순간온수기는 마을 간이상수도에 석회가 많아 일찌감치 고장 나버렸다. 온수가 필요할 때는 가스레인지나 연탄난로에 큰 찜통 한가득 물을 데웠다.

신발도 한 켤레, 가방도 하나. 어쩌다 특별한 날, 면소재지 반점 만리장성에서 탕수육 대자 하나 추가해서 먹는 짜장면 한 그릇이면 남부러울 것 없는 외식이었다.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부모님 댁에 갈 때도 뭘 사 갖고 갈 생각을 못했다. 차비와 찻값이 부담되어 친구도 거의 안 만났다.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자기 먹을 것을 갖고 와야 한다고 공표했다.

  사실은 내가 소비하는 만큼 세상 어디엔가 있을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것이라는 어떤 생각에 막연히 동조하던 때였다. 꼭 필요한 거 외에는 소비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돈을 더 많이 벌지 않아도 되는 당위성이랄까?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면 친구들이 나를 대신해 돈을 더 썼다. 명절 때도 형님들이나 동생은 우리 딸에게 용돈을 주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들도 모두 힘들게 하루하루 일해서 번 돈일 텐데……. 속으론 차라리 그들도 용돈을 주지 않으면 마음이 더 편할 텐데 싶었으나 세상인심이 그렇지가 않았다.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고.  우리가 돈을 그렇게나 벌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건 누군가 우리 몫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관계를 위한 도리를 우리는 언제까지 외면하며 살 수 있을까?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다 보니 점차 필요한 것이 늘어갔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돈이 없어 아예 할 생각을 못하는 경우도 생겼다.

자신을 찾아갈수록 모르는 사이에 욕구도 점점 커졌다.

아직 젊은데 계속 이렇게 쪼그라들기만 하는 게 맞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돈은 없어도 우리에겐 억누를 수 없는 패기가 있었으니까.

 돈을 벌어야겠다!


초상화 일은 수입을 예견할 수 없고 외지로 다니며 야외에서 일하느라 남편은 그 사이 몸이 많이 상했다. 

무릎에서 찬바람이 숭숭 나온다고 했다. 윤기 흐르던 얼굴 피부도 많이 거칠어졌다.

우리는 초상화를 그만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남편은 예전부터 하고 싶어 했던 공방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생계의 전환을 꾀하며 이리저리 궁리하는 동안 수입이 없어 곤란했다.

그때 마침 내가 면소재지 학원에서 강사로 몇 달 일할 수 있게 되었고, 그 후에는 선거감시단 일도 하며 생활비를 조달할 수 있었다. 나의 단기 아르바이트는 징검다리가 되어 생계의 전환기에 아주 요긴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과연 우리는 과도기를 넘어서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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