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꿈을 찾아 철 밥통이라는 공무원직을 미련 없이 떠나 백수가 되었다. 남편도 주말에 시내에 나가 초상화를 그릴 때 외에는 정해진 일이 없었다.
신암동 집에서 서부정류장까지 시내버스 40분,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고령까지 50분. 종종 무섭게 밀려 왕복 4시간이 걸리기도 한 출퇴근길과 생각 같지 않던 공무원 생활에 나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고 약해져 있었다. 호기 있게 사표를 내고 나왔지만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기만 하면 열심히 하는 건 자신 있는데.......
먼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했다. 남편은 공방을 하고 싶어 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풀어가는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는 하루하루를 잡아줄 원칙이 필요했다.
‘자신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자’,
이것이 우리 결혼 생활의 원칙이 되었다.
남편은 주말에만 시내에서 초상화를 그려도 1주일에 20만 원씩 한 달에 팔십만 원은 벌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 달에 팔십만 원이면 내 공무원 월급보다 훨씬 괜찮은 수입이었다. 나는 결혼 전에 잠시 하던 피아노 조율을 다시 한번 해보리라 생각했다. 일단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만 하면 처음 생각대로 적은 시간으로 얼마간의 생활비를 벌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세상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르지만, 그때의 우리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돈 버는 시간은 최소로, 자신을 위한 시간은 최대로, 물론 소비도 최소로 간소하게 살기. 둘이 마주 앉아 정한 우리의 원칙이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