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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Mar 07. 2024

그 길에서

    1994년 가을은 환경직 공무원으로 일한 지 2년 하고도 몇 달 지난 때였다. 

 동료 선배들을 따라 거리에 나가 자동차 배출가스 단속을 하거나 환경오염 신고를 받고 출동할 때는 제법 환경지킴이가 된 기분에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성정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던 공장의 기계들, 법에 관한 용어들에는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아 어렵기만 했고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도 없었다.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서류를 처리하거나, 그때 막 시행하기 시작한 환경개선부담금 작업을 해야 했다. 몇 천원도 안 되는 고지서를 뽑느라 가뜩이나 잘 못하는 컴퓨터 작업에 골머리를 썩었다. 서류에 도장을 찍고, 고지서를 출력하고 수없이 많은 봉투에 일일이 주소를 적어 넣는 일은 내게 무의미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자유로운 상상과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던 나. 공무원 생활은 몸에 맞지 않는 철갑옷 같았다. 억지로 몸을 끼워 넣느라 불편하기만 한.

 2년여 시간이 지나면서 출근길 군청 사무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은 점점 더 느려지고 나도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매일 아침.......  


 어느 날, 퇴근길 시외버스 차창 밖으로 짙어가는 가을 색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토요일이 되어도 약속 하나 없이, 집에 들어가면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잘 내 한심한 20대의 끝자락을 생각하니 외롭고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고령에서 대구까지 밀리며 오는 버스 유리창에 기대어 무장을 해제한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마 그날이었던 거 같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단잠에서 깨어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았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창밖은 어슴푸레 어두웠다. 미대 친구였다. 전화선 너머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친구들 누구누구랑 같이 있는데 갑자기 얘기가 나왔다며 내일 소개팅 안 하겠냐고 물었다. 그러는데 옆에서 친구들이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얼떨떨했지만 마침 외롭던 차에 소개팅에 나가기로 했다. 

 다음 날 오전, 나름 제일 좋은 옷을 찾아 입고 가끔 들르던 시내 작은 카페에 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파아란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웃음 띤 얼굴로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2년 동안 촌으로만 다니며 군청 밖의 사람들은 거의 안 만났더니 내가 너무 촌티 날까 봐 조금 걱정이 되었다. 시골 군청에서는 안경 끼는 것조차 큰 결함인 듯 말하는 사람도 있어서 나도 모르게 조금 주눅 들어 있었던 가 보다. 


 그런데, 그는 무광의 노란빛을 띤 내 철 테 안경이 예쁘다고 했다. 그 말에 내 마음속 얼음장은 봄볕에 닿은 듯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고 그 해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서로 편안함을 느꼈다. 몇 번의 만남 속에 우리는 조금씩 더 친밀해졌다. 이제 나도 토요일 오후엔 데이트를 했다. 대구 시내 좁은 상가 골목길에 팔짱 끼고 꼭 붙어 다니는 연인들 무리 속에 나도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고호를 동경하며 오로지 그림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1994년 대학 졸업 후에는 돈을 버는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작업도 될 수 있겠다 싶어 주말에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린다고 했다. 찻집에 앉아 있을 때도 나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 모습을 그리곤 했다. 나는 그의 그림 그리는 모습이 좋았다.

 당시 공무원 생활이 너무 갑갑했던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갑자기 덜컥 그러기에는 엄마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결혼을 생각했다.  직장이 멀기도 하니 결혼이라도 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뭔가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 있긴 하지만  내겐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는 나도 알고 있던 지인들과 인도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미지의 세계를 동경하던 많은 사람들이 인도로 떠나고 있었다. 지금 여행을 떠나버리면 돌아왔을 때는 내가 없을 거라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하루하루 의미 없이 죽어가는 내 시간이 아까워서 그가 여행하려고 하는 그 몇 달도 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때 다른 누군가와 결혼할 수 있었을지 물론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결혼하자고 했다. 인도에는 다음에 같이 가자며.

  만난 지 석 달 만에, 아홉수에 들기 전에 결혼하라는 시어머니의 강경한 뜻에 따라, 한 겨울 찬바람이 매섭게 불던 1995년 1월에 우리는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직장에서 한 단계 첫 진급을 하고 쥐꼬리 만한 월급도 조금은 올랐지만 내 발목을 잡지는 못했다. 나는 사표를 내고 자유인이 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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