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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eam Mar 03. 2024

20대, 꿈으로 가는 길 찾기

 꿈꾸는 공작소의 꿈

꿈꾸는 공작소가 꾸는 꿈     

꿈꾸는 공작소를 통해 우리가 꿈꾸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살기.


이 이야기는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에 깃들여 사는 

우리 가족의 꿈 이야기다. 

    

<20대, 꿈으로 가는 길 찾기>     

 1990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하고 싶은 게 무한히 많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모두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엄마 혼자 박봉으로 가계를 꾸리는 집안 형편상 돈 버는 걸 무시하고 하고 싶은 것만 할 수는 없었다. 좋은 길이 없을까 찾다가 TV에서 피아노조율에 대해 방송하는 걸 보았다. 하루 네 시간 정도 일하고 월 30~40만 원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경북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 원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꽤 고소득이었다. 시간 대비 수입도 환상이고 피아노를 즐겨 치던 나에게 음을 다루는 피아노조율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었다. 내 꿈을 뒷받침해 줄 일로서 더할 나위 없이 딱이었다. 1년 반 정도 정말 열심히 과정을 배우고 실전에도 나서서 친구네 집 피아노를 조율해주기도 했다. 

 피아노 조율은 아주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기술을 연마하는 데에도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영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바로 수입이 되는 게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피아노 조율을 하는 게 목적이 아니고 기본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하기에는....... 좋아하는 일들이란 대체로 바로 생활비를 보장해주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손에 금세 잡히지 않는 꿈들은 잠시 뒤로 미루고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엇이든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까지 포기할 순 없었다.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건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나오는 수돗물을 오염으로 인해 먹을 수 없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동네 가게에서 우유를 사다 먹고, 멀리 가창 댐까지 한 시간가량 버스를 타고 가서 물통에 생수를 받아와서 먹어야 했으니까. 이왕 취직을 하려면 최 일선의 환경지킴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마침 경북에 9급 환경직 공무원 시험이 공지되어 있었다. 이거다! 급히 준비를 해서 합격을 했고 1992년 7월, 낙동강에 연해 있는 경북 고령군에 9급 환경직으로 발령받았다. 고령이라는 소도시도 공무원이라는 세계도 처음 보는 용어들로 가득한 환경업무도, 모든 게 낯선 직장에서 결혼을 핑계로 그만 두기까지 2년 5개월 동안 일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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