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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Nov 01. 2023

무가치함의 포화상태

쓸모없음으로 질식하는 일상

인간이 필멸자임은 언제나 늘 자명하지만, 이토록 매일 질식하며 죽어가는 날들이 이어진다는 것은 또 다시 새롭게 절망적이다. 의식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에 타인의 흔적이 내게 쏟아진다. 오늘의 삶에도, 어제의 삶에도, 내일의 삶에도 쓸모없을 타인의 흔적들이 쏟아진다. 이미지는 언어를 대신하여 눈 앞을 스쳐 지나간다. 텍스트는 하루의 정신력을 소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듯 정신을 갉아먹으며 머리 속을 흘러내린다. 청각적 무료함을 해소하기 위해 수많은 말들을 고막에 때려박는다.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기까지의 하루를 납치당한다. 눈과 귀는 납치당했고 그 인질극의 몸값으로 하루의 정신력을 전부 지불하고 나서야 잠에 들 수 있다. 


누가 마약을 하건, 누가 사기 결혼을 했건 그게 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중요한 이유를 찾으라면 몇개 쯤 찾겠지만 그게 정말 중요한 일들인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에 불과하다. 하루를 소진하기 위해, 비어있는 시간을 무엇으로라도 채우기 위해 가십을 소모한다. 인터넷은 끝없는 가십의 보고라 절대 소진될 일이 없음에도 매일 그 끝을 갉아먹을 기세로 빠져든다. 


눈은 텍스트와 이미지에 중독된지 오래라 아무 것도 없는 벽을 쳐다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눈을 감고도 잠에 들지 않은 채 의식을 깨워두는 것도 어려워졌다. 눈을 감고 어떤 장면을 상상하는 경험을 해본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가. 청각 자극의 소강상태를 견디는 일은 또 얼마나 힘들어졌나. 배경의 소음으로 소모되는 노래들, 눈이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시간에 그 대체재로 소모되는 영상 속 음성들. 그 중 어느 것이 하루의 끝에 남아있는가. 거의 모든 것이 소진되기 위해 소비되고, 그 역할을 마치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검이 가장 무서운 법. 무가치함의 소진으로 하루를 보내는, 매일 질식하는 삶에도 도파민 중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평범해졌다. 삶의 그 무엇도 바뀌지 않았는데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도파민에 중독된 상태라고 누군가 명명했으니 해결법도 금방 나오겠지. 유튜브를 그만 보고, 핸드폰을 멀리하고, 명상을 통해 마음을 챙기다보면 예전의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겠지. 정말 그런가? 과거의 고요함을 회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성질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에 미성숙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한가.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사실은 생명이 존재하는 모든 순간에 함께 존재해온 진실이지만, 죽어가는 삶이라고 모두 같은 모습이지는 않다. 필멸의 삶이기에 매일 질식하는 삶이 무슨 문제인가 묻는다면, 매일의 궤적이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일년에 한두번 일어나는 특별한 날을 위해 나머지 삶을 죽여서야 그 삶을 멀리서 보면 잿빛 띠에 불과하지 않은가. 


매일을 남기고 싶어서 수천장의 사진을 찍지만, 찍는 일로 삶이 가득 차는 바람에 과거의 기억은 꺼내지지 않는다. 본인의 기록은 그렇게 기록된다는 환상속에서 썩어간다.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 타인이 남긴 무가치한 흔적들이라니 절망적이지 않은가.


내가 문제 삼는 것은 두가지이다. 내 삶을 채우는, 타인이 남긴 무가치한 흔적들이 만드는 질식과 내 청력과 시력, 이들에 연결된 정신을 소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쏟아지는 문자, 이미지, 음성, 소리의 지배가 그것이다. 하루를 채우는 능독적 행위의 목적이 정신력의 소진일 뿐인 상황의 허무함을 말하고 싶다. 정신력의 소진을 위해 쓰이는 재료들이 대부분 내 삶에 어떤 파동도 일으키지 못하는, 타인이 남긴 무가치한 흔적들임을 말하고 싶다. 


나의 생명은 소모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내 정신력은 소진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다. 나는 필멸자이지만 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존재의 의미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가는 누구보다 빨리 죽음에 이르게 되겠지만, 적어도 질식해서 죽는 삶은 거부하고 싶다.


"Rather be dead than cool." from Stay Away in Nevermin' by Nirv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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