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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석문 May 15. 2020

부끄러움의 이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

어렸을 때 제가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었는데 영화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그 말을 하셨던 분이 누구셨냐면 그 말은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가 했던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소감 중에서-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은 연세가 있으신 분이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시큰둥함이 배어 나오셨다. 아이들은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고 사실은 나도 역시 그랬다. 때때로 신경질적이고 엄하셨는데 가끔 이상한 과제를 내주셨다.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을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방식으로 지어오라고 하셨다. 예시는 영화 제목이기도 한 '늑대와 함께 춤을'과 같이. 그 영화에서 주인공인 케빈 코스트너가 늑대와 사투를 벌이는 걸 보고 극 중의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아직 그 영화를 본 적이 없어 정확한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사실 이런 건 오래 고민한다고 좋은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만한 숙제도 아니니 이런저런 생각 끝에 그 당시 보고 싶었던 영화의 제목을 인용하기로 했다. '안개 속의 풍경'이라고.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이 영화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보게 되었다.


   적당히 생각을 정리했고 다음 국어 수업 시간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한 명씩 돌아가며 생각해온 이름과 그 이유를 간략하게 발표시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꽤 신선하고 센스 있는 이름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 반 친구들의 발표를 들을수록 나는 조금씩 작아져 갔다.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이름을 지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처럼 영화 제목을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으니까. 어느덧 내 차례가 왔고 어떤 식으로든 이 초라함에서 벗어나려고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그럴듯한 이유를 댔다. 대략 기억나는 대로 정리하면 "안개 속의 풍경이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입니다"


   얼굴에 열이 나고 부끄러움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몸이 간질간질했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시고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하셨다.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의 이유는 아마도 나 자신을 온전히 스스로 표현하려고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멋있어 보였던 '안개 속의 풍경'이라는 말에는 내 생각이나 고민, 정체성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허울 좋은 말 일 뿐이었다. 유치하고 조악하더라도 나는 나를 담아낼 수 있는 말의 그릇을 찾아냈어야 했다.


   이름 짓기 사건을 뒤로하고 하루는 선생님이 국어 교과서를 덮으라고 하시더니 노트를 꺼내 자유롭게 글을 하나 지어보라고 하셨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하고 군데군데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이나 소회를 버무려 적어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찾아오는 발표 시간 앞에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끄러움이 내 몸을 간지럽히는 기분은 썩 유쾌한 것이 아니었기에 내심 얼른 수업 시간이 끝나 내 차례가 오지 않기만을 바랬다. 눈으로 그 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며 초조하게 다른 친구들의 발표를 들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들 하지만 그 순간엔 그저 의미 없는 말에 불과했다. 내 순서가 오자 얼굴을 노트에 파묻을 것처럼 가리고 한 줄씩 읽어 나갔다.  


   마지막 줄을 읽자마자 그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도록 잽싸게 자리에 앉았다. 발표가 끝나 선생님은 나를 앞으로 불러 다시 한번 읽어보게 하셨다. 온몸에서 흐르는 땀이 꿈틀꿈틀 거리는 와중에 선생님은 내게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다. 전혀 다른 부끄러움이 피어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좋은 평을 해주신 것은 아마도 나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려는 마음을 예쁘게 봐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안개 속의 풍경'을 나의 이름으로 지으며 타인의 멋진 글과 작품들 앞에서 경탄하고, 무작정 모방하기만 하려 했던 나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평범한 나를 표현하는 일이 때때로 비범한 순간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낀다. 그리고 무뚝뚝했던 선생님의 모습과 그 옆에서 부끄러웠던 나를 대비시켜본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커버 이미지: 요하네스 베르메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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