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신

고물장수 정씨

by 뒷벼

방앗간에서 이사간 옆집은 뒤란과 앞마당이 넓은 기와집이었다. 대문을 나서면 신작로를 사이에 두고 텃밭이 넓었고 우리 밭과 길 사이엔 작은 또랑이 흘렀다. 반대편 쪽문을 넘으면 우물이 깊었고 그 너머로 옥수수가 길솟은 좁고 비탈진 묵정밭이 있었다. 우물 옆으로 좁은 고샅길을 따라가면 카투사를 나와 영어로 말을 하던 병수 아버지네와 도라지를 까서 고덕시장에서 돈을 사던 현숙이네 그리고 절을 지으러 다니던 목수 종희 아버지네가 올망졸망 붙어 살았다.


큰길 옆 텃밭은 참깨 수확을 끝으로 김씨 아저씨라는 고물 장수에게 세를 주었다. 학교를 가려고 문을 나서면 예덕, 마교리, 몽곡리 등에서 학생들이 총총히 우리집 앞을 지나 작골 가는 언덕을 올랐다. 나는 고물로 쌓여 있는 밭 옆에서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치는 것이 싫어 일찍 학교에 가곤 했다. 그 밭은 김씨와 나머지 엿장수들이 리어카로 수집해 온 고물들로 수북했다. 나는 학교 갈 때를 빼고는 그 고물 더미가 싫지 않았다. 나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팔 할이 그 고물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기계를 고치거나 작동 원리를 알아내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는 고물들 사이에서 물건을 하나씩 가져와서 나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고물 더미에는 온갖 종류의 고장난 시계, 라디오, 전축, 자전거, 테레비 등 없는 게 없었다. 브라운관 TV가 진공이라는 것을 직접 깨서 소리를 들으며 확인했고 후면의 화이트밸런스와 컨버전스를 분해해서 마루에 펼쳐 보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각종 저항과 콘덴서와 다이오드를 인두로 녹여 빼내기도 했다.


폐 종이 묶음 사이에는 헌 책도 많았다. 나는 그 헌 책을 풀어서 하나 하나 읽는 일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 중에 “기억술의 마법”이란 책은 기억을 잘하는 방법을 설명해 놓은 책인데 그 신기한 비법으로 천재 소리를 듣기도 했다.


고물장수 아저씨들은 들고 나기는 했지만 늘 대여섯 명이 있었다. 그 중에 낮잠 잘 때에도 절대 모자를 벗지 않아서 그 모자를 벗겨볼 궁리를 했던 최씨와 월남전 당시 베트공과의 무용담을 자주 들려주시던 정씨가 기억난다.


정씨 아저씨는 나의 유년시절을 풍요롭게 한 중요한 인물이다. 믿을 수 없게도 정씨는 서울에서 약사를 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작은형이 비료부대로 야구 글러브를 만들어 손가락 구멍을 내다 검지에 깊은 상처가 났는데 정씨가 치료해 주었다. 정씨는 차분하게 자신의 가방에서 바늘과 실을 꺼내 그 손가락을 꿰맸다. 그 바늘은 살을 꿰매기 편하도록 휘어져 있었고 꿰매고 묶는 실의 매듭은 견고하고 일정했다. 모두들 그 광경에 놀라 마취도 없이 살을 꿰매 아파하는 형보다 정씨를 쳐다보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폐병을 앓으셨는데 정씨 아저씨는 알 수 없는 약 이름을 메모지에 써줬고 나는 그 종이를 들고 읍내 약국에 가서 약을 사왔다. 정씨는 그 약을 모두 뜯어서 네모난 흰 종이에 골고루 나누어 넣었다. 그걸 다시 약국에서 약을 받으면 접혀져 있는 모양으로 견실하게 접어서 차곡차곡 봉지에 담았다. 그는 의심할 수 없이 분명한 약사였다. 외과의처럼 손을 꿰매고 약사처럼 처방을 하고 약봉지를 접을 수 있는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고물장수를 하는건지 궁금증이 더해갔다.


그는 나에게 바둑과 장기도 가르쳐주었는데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머지 고물장수 아저씨들을 모두 이기게 되었다. 정씨는 나에게 바둑을 가르쳐 줄 뿐 실제로 사람들과 바둑을 두지는 않았다. 그는 월남전 얘기를 자주했다. 그가 몇 번이고 들려준 무용담 중에서 다낭 전투가 가장 긴장감 넘쳤다. 베트공과 격전을 벌이고 있을 때 적의 동태를 확인하려 쏘아 올린 조명탄이 아군의 위치를 노출시킨 꼴이 되어 집중 사격을 받자 정씨가 죽을 힘을 다해 “조명탄 쏘지 마~~”하고 외쳐댔다는 대목은 들을 때마다 비장했다. 그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보상금으로 목돈을 받았다며 소매를 걷어 올려 보여준 그의 오른 팔에는 해군의 닻 문양 문신이 있었다.


사람들은 정씨가 심각한 알코올 중독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파월 장교였고 이름난 약사였고 바둑 고수였던 지식인이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이런 시골에서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로 산다니. 정씨는 중학생 소년에게 한없이 신비로운 인물이었다. 그 해 가을 작은 사건 하나가 발단이 되어 그를 무너뜨릴 때까지 정씨는 나의 우상이었다.


구장터 다리를 건너 면천 방면으로 간이 차부가 하나 있었다. 그 차부에서 누군가가 정씨에게 굳이 술을 한 잔 권했다. 정씨가 알코올 중독자이므로 절대 술을 권하지 말라고 동네 사람들에게 당부했고 오랜 동안 정씨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 날 외지인이 권한 술 한잔에 정씨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술 한잔이 발단이 되어 정씨는 고덕의 술 파는 곳 사방팔방을 찾아 다니며 주사를 부리는 주정뱅이로 급변했다. 가게에서 술을 빼앗아 마시고 쫓겨나기를 반복하던 그의 행패와 광기는 나흘만에 멈추었다. 더 이상 아무도 술을 주지 않자 급기야 공업용 메틸 알콜을 마시려다 고물상 김씨에게 죽도록 맞고 그쳤다.


소란이 가시고 잠잠해진 후 정씨는 말을 잃고 사람들을 피했다. 날이 좋았던 파란 가을 날에 정씨는 고물을 싣고 온 리어커를 반듯하게 세워두고 그 옆에 쓰러져 각혈을 한 채 죽었다. 내가 정씨의 시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김씨에게 알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정씨의 시체가 무섭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어 정씨의 시체 앞에서 수군거렸다.


“죽을 때 말여, 여자는 누워서 죽고 남자는 엎어져 죽는다던디 이 양반도 엎어져 죽었구먼”
“각혈을 하고 죽은거 보니께 폐병을 앓았내벼”
“근디 손목에 찬 저 시계는 누가 가져가넝겨?”


정씨는 비닐로 감겨서 그가 끌던 리어카에 실려 옥골방죽 옆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나는 정씨의 죽음이 슬펐다. 그의 팔뚝에 새겨진 닻 문양 문신이 여름 날 힘찬 비누질에 오히려 더 선명해졌던 것처럼 그의 기억을 지우려 할 수록 내 가슴에 파랗게 닻을 내렸다. 정씨가 죽고 나서는 더 이상 고물 더미에는 가지 않았다.


뒤란 울타리 너머 산 자락에는 접도구역이라 쓰여진 노란색 시멘트 기둥이 있었다. 나는 고물더미 대신에 거기에 앉아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중학생 소년이 접도구역 기둥에 앉아 상상했던 몽상과 외웠던 교과서와 꿈꾸었던 꿈들이 내 기억 속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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