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안정적 시스템의 보호아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개구리는 위험하다
가끔 SF 영화를 보며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이 영화의 작가는 혹시 미래에 다녀온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은 상상의 범위는 너희가 아는 만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대로라면, 이토록 리얼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기 위해 그들이 파헤친 현실의 구조적 결함은 얼마나 비극적이었을까.
영화 인 타임(In Time)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여자가 아들의 손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린다. 손목에 새겨진 타이머는 0을 향해가고, 맞은편에서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달려오는 아들의 손을 잡기 직전 숫자가 멈춘다. 그 순간 여자의 심장도 멈춰버린다. 이 영화가 그린 세계에서 시간은 곧 화폐다. 부자는 영원을 사고, 빈민은 당장 내일 아침을 살 시간조차 구걸해야 한다.
과연 이 장면이 먼 미래의 상상에 불과할까. 이미 우리 곁에는 유사한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2023년 내전 중인 시리아 알레포에서 한 남자가 아내의 혼수품이었던 금반지를 빵 세 개와 맞바꿀 때, 그는 사실 내일을 살 시간을 산 것이다. 반면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이 젊은 피를 수혈받으며 영생을 꿈꿀 때, 인류의 유일한 평등이라던 죽음의 명제는 무너지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의 원인을 흔히 독재와 민주화 열망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농촌 인구 150만 명이 도시로 밀려들고 빵값이 폭등했던 기후의 비극이 있었다. 이건 정치 전쟁이기 전에 물과 밀을 차지하기 위한 기후 전쟁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한 달 치 월급으로 달걀 한 판을 살 수 없어 변호사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풍경이 일상이 되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식량 가격이 30% 상승했을 때, 그 수치가 어떻게 정권을 흔들고 거리의 불을 지르는지 우리는 목격했다.
결국 안정적인 기후와 풍부한 식량이 인류에게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평화였다.
오랜 세월 나의 삶은 거의 똑같은 환경에서 별 부침 없이 이어져 왔다. IMF도, 금융위기도, 코로나도 그저 월급이 조금 깎이거나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마스크가 지겹다거나 자가격리자를 관리하는 업무가 고되다는 정도의 감각으로 지나갔다. 10년 전이 1년 전 같고, 15년 전이 얼마 전 같은 압축된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최근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엥겔지수의 가파른 상승이다. 식료품 원자재 물가가 오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전쟁으로 밀 공급이 줄어서만이 아니다. 이제 농사는 들판의 비와 햇빛이 아니라, 통제된 환경 속에서 인공의 에너지로 생산된다. 지금 벌어지는 호르무즈 해협의 분쟁이 우리가 먹는 식량의 생산 원가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농업이 에너지 가공 산업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의 식탁은 기름값에 동기화되었다.
말 그대로 오일쇼크가 다시 찾아왔다. 우리 사회 시스템의 회복탄력성 덕분에 겉으로는 아직 평온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탄소 연료로부터 빠르게 벗어나야 할 또 하나의 필연적인 당위성을 갖게 되었다. 재생에너지가 수소를 만들고, 첨단 기술이 쏟아내는 열에너지가 다시 스마트 농업의 동력이 되는 에너지 순환 시스템. 이 지연 없는 순환이 빠르게 완성될수록, 지구는 우리를 파괴적인 바이러스가 아닌 생명을 가꾸는 정원사로서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