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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ertee May 06. 2024

실체가 없음.

삶의 여백이 너무 부족해서 7

지금은 본가다. 본가라는 말보다 엄마아빠 집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엄마아빠 집에서는 촌스럽지만 눕기만 해도 잠이 오는 이불과 내 첫사랑인 M과 두 번째 사랑인 MM이가 있다.

지금 M은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내 타자소리에 M이 깰까 봐 조심스럽다.



어제는 엄마 아빠한테 내 상태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말하면서 스스로 한 번, 엄마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내 불안과 두려움에는 실체가 없구나.’

사실 이 전에도 알고 있는 거긴 했다. 그래도 이전에도 이때도, 그냥 나는 다 내 잘못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다.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맘대로 되는 게 더 많이 없는데, 그게 당연한 건데... 지금까지 뭔가 잘 안 되면 왜 그런 건지 혼자 또는 같이 얘기를 나눠봤고,

그러면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듣고 또 듣다 보면 다 이해가 갔고,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다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럼 뭐가 문제지? 싶으면 결국 ‘난가? 나네.’ 했다. 그러다 마음이 너무 아리고 그냥 다 미안해졌다. 모든 것에. 나한테만 빼고.



문상훈 님의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책에

이제 나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됩니다.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합니다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기로 그리고 덜 째려보기로 합니다.

라는 글이 있다.

‘이제 나만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된다.’ 가 계속 계속 떠오른다. 

( 이런 나.. 자기 연민일까? 그건 진짜 싫은데.. 하다가도 억지로 '아니야 아닐꺼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음 상담 시간에 선생님께 여쭤봐야지.' 한다. )


나 이제 엄마 아빠랑, J랑, S랑, 내 조용한 불안에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봐 주는 사람들이랑 특히 나랑 같이, 자신한테 시간을 좀 더 줘볼까 싶다.

그래서 이 사람들 품에 있고 나서의 내 모습일 때 급하게 ‘가장 자유로운, 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결과 같은 건 아무래도 좋으니 나한테만 재밌는 거, 그냥 아무 생각’을 적어둔다.

휴지 위에라도, 아이폰 메모장이라도, 카톡에 들어가서 가장 위에 있는 그냥 아무 카톡방에라도.

자신의 한정된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포스트잇에 허락된 시간 동안 소중한 것들을 적어 내려 가는 사람처럼.


나는 글을 쓰고 J는 책 디자인이랑 제작해 주고 그래서 책 내봐도 재밌겠다.

옷도 만들어보고 싶고

J랑 창업 아이템 얘기도 했고, 그 아이템에는 뭐뭐뭐가 있었지.

아니면 대학원가도 재밌겠고

수능 다시 쳐볼까?

커피도 배워보고 싶고

와인도..

첼로도 다시 하고 싶고

노래도 배워보고 싶고

우리 M, MM이랑 차박도 하고 싶고

팟캐스트도 하고 싶고 그냥 청자가 0명이어도 그것 나름 너무 안심이겠고,

… 이런 거.


그러고 나면 오랜만에 '재밌겠다'라는 감정이 글자 그 자체로 찾아온다. 




오늘의 책

내가 한 말을 내가 오해하지 않기로 함 - 문상훈


오늘의 노래

나는 -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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