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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스컴퍼니 Feb 21. 2018

이런 디자이너도 있다

벌써 7년 차 스트레스컴퍼니 대표의 자기소개서 

저는 그림을 그려서 대학에 갔지만, 학교에 가서는 사진을 찍었고, 지금은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에 회사를 만들었으니 올해 벌써 7년 차가 되었네요.(믿을 수 없...) 그러나 저는 아직도 제가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맞는가 라는 고민을 종종 하곤 합니다. 아직도 잘 팔리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싶어 하고, 돈이 된다는 것보다 재밌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주제에 어떻게 겁도 없이 사업자를 낸 걸까요?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나만의 브랜드를 갖고 싶었습니다. 

나만의 철학을 담은, 그래서 나밖에 만들 수 없는, 아무도 만들지 않은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것들 말입니다.   





열일곱 살의 어느 날, 잡지에서 앨범 재킷 디자이너의 인터뷰를 보고 있는데 갑. 자. 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까지 미술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이게 만들 수 있다니?! 디자이너란 정말 멋진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1년 동안의 고민 끝에 엄마를 졸라서 미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렇게 디자이너를 꿈꾸며 시작했던 미술이었지만, 그림을 그리다 보니 순수미술을 전공하면 더 풍부한 매체를 다루는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러면 왠지 더 멋진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렇게 멋대로 겁도 없이 순수미술이라는 전공을 택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첫 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나, 고등학교 때부터 꿈꿔왔던 학교에 재도전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다니면서 포트폴리오 작업을 준비해서 다시 입시를 봤고 결국 합격하고 맙니다. 어린 저는 그 학교에만 가면 내 인생이 달라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던 자화상 1 / Copyrightⓒ 이남희 All Rights Reserved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던 자화상 2 / Copyrightⓒ 이남희 All Rights Reserved




꿈속에서도 가고 싶었던 나의 학교



미대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표현하는 곳입니다. 매번 과제를 할 때마다, 나만의 철학과 의도를 가지고 왜 이런 작업을 한 것인지를 설명해내야 했으나,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지금 내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나는 이 세상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고민을 거듭할수록 더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아직도 미술이 아직 뭔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무언가를 만든다면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아닌지 두려웠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작업이란 걸 하면 할수록 갤러리는 사람들과 거리가 너무나 먼 것 같고, 내가 생각하는 미술과 사람들 사이에 간극은 더더욱 넓게만 느껴졌습니다.



대체 이 간극은 
어떻게 메울 수 있는 것일까?


미술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의 생각의 생각의 끝에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저는 수포자였기 때문에, 의대에 갈 자신은 없었습니다.(맴찢....) 그렇다고 포기하진 않고, 그냥 무작정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휴학을 하고 정신병원에 전화해서 미술치료 봉사를 하겠다고 하니 다들 흔쾌히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정신병원에 미술치료 봉사를 하러 다니고, 아로마테라피를 배우겠다며 생판 모르는 제주도 허브농장에 찾아가서 허브를 뜯는 등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다른 길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가 책을 보고 조언을 얻고자 무작정 찾아갔던 정신과 선생님께서 대체의학을 하느니 차라리 의사가 되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오히려 의사가 아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미술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됩니다.



나를 키운 것의 8할은
오기... 였다...


학교에 돌아오자마자 했던 것은 바로 인터뷰였습니다. 교수님들을 찾아다니며 물었습니다. 많은 대답을 들었지만, 그때 제 기억에 가장 남았던 답변은 바로 이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미술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는 불만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불만에 가득 차 있으니 이 걸 표현만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 저를 가장 괴롭게 했던 못생긴 도시 건축물을 비판하고자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건물을 찍겠다고 서울 한 복판을 네다섯 시간을 하염없이 걸어 다니는 것은 기본, 아무 건물이나 들어가서 옥상에 올라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다 쫓겨난 것도 여러 번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드디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생겼으니까요. 




Copyrightⓒ 이남희 All Rights Reserved
Copyrightⓒ 이남희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모든 방황이 끝이 난 듯 보였던 저는 다시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의도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제가 찍은 건물 사진을 보면서 예쁘다고 하는 겁니다. 제 눈에 흉하게 보이는 건물들을 찍어서 보여주면 다른 이들도 제 마음을 이해해주리라 믿었는데, 저의 의도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저는 당황했고, 결국 제가 찍은 사진을 설명하지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져 졸업심사를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털썩... 



그 깟 졸업장 따위!!


졸업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졸업이 안 되는 학교 방침에 따라, 다음 학기에 다시 졸업심사를 준비해야 했지만 졸업장 따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학교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스트레스컴퍼니를 할 수 있도록 분노를 제공해주신 독불장군 같았던 사장님 밑에서 폰트 디자인을 배우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5년간 11,172자의 한글을 만드는 일에 매진하면서 양은 냄비처럼 일희일비하던 제가 엉덩이로 발현되는 인내심이란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예술학도에서 직장인이 되어보니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게 되더라고요. 학교 다닐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지저분한 간판들, 왜 저렇게 지었는지 모를 못생긴 건물들, 다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그것들 속에서 매일 출근하고 퇴근하는 삶을 살다 보니, 나는 그동안 알맹이가 아닌 껍데기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건물은 껍데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그제야 못생긴 건물을 찍었음에도 왜 내 사진이 예쁘게 보였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같은 사진을 찍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의도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건물 속 사람들의 삶의 흔적 덕분에 건물까지도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8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졸 업




졸업만 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퀘스트를 하나씩 깨는 것과 같아서, 하나가 끝났다 싶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제 눈앞에 나타나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이 것만 하면, 행복해질 거야. 저 것만 이루면 인생이 달라질 거야"라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냥 한 발짝 한 발짝을 꾸준히 가는 겁니다. 


우여곡절을 거쳐 졸업을 하고 나니 서른이 코앞이었습니다. 스물아홉. 아홉수였을까요.. 저는 제2의 사춘기에 빠져 디자인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가에 대해서 다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꼬박 1년을 고민하고 서른이 되는 해에 퇴사를 했습니다. 그리고는 학생 때 갖고 있었던 열정을 되찾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길로 대출을 받아 아시아 크리에이티브 아카데미라는 곳에 등록하고 한, 중, 일 크리에이터분들께 디자인 수업을 들으며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신감을 끌어올리게 되었습니다.



사회적 기업 노리단 공연팀의 공연 모습



그 후, 하고 싶은 것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회적 기업 노리단에 사회디자인팀 디자이너로 입사하여 재활용 교구를 활용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디자인하였으며,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 총괄 코디네이터로 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사회적 경제에 발을 딛으면서, 이런 세상도 있었구나 신기해하기도 했고, 기대와는 다른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었지만 이곳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던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일했던 기억은 아직도 뿌듯하게 남아있습니다. 


처음 회사를 구상하면서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습니다. 같이 고민해주던 친구가 임신을 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고 나중에 경력단절 여성들과 함께 함께 회사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요. 그래서 굳이 분노 캔들을 노동집약적인 수공예 캔들로 만들고 이 캔들이 잘 팔리면 경력단절 여성들과 함께 일해야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그만큼 팔려주지는 않더군요... 


쌍심지로 분노를 태운다니, 너무 재밌다고 좋아는 하지만, 팔리지는 않는 캔들을 보며, 나만 좋아하는 걸 만들었나 하며 자책하며, 이 일을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 과연 먹고살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귀가 팔랑거려서, 제대로 하지도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못하는 제가 안쓰러웠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들을 거치고 나니 조금 더 단단해짐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이 길을 놓지 않고 계속 걸어가기만 한다면, 분명히 길이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좋아하는 일을, 가장 잘하는 방법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해나가는 것입니다.


저는 예민하고 세심하고 섬세한 순수미술 전공 그래픽 디자이너입니다.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은 저를 위해 회사를 만들었고, 저와 같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즐겁게 극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고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저의 성격을 자책하고 한탄했던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예민하지 않았다면, 스트레스컴퍼니를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지금까지 지속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태생이 극단적이고 예민한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다면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저처럼 예민한 사람들도 자신의 단점을 자책하기보다 장점을 자랑스러워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앞으로의 저의 미래도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의 미래에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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