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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레스컴퍼니 Jul 04. 2018

살다 보면 미대를 나와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는 미대생들에게 보내는 편지

무심코 웹툰을 넘겨보다가
저의 미대생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을 만났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그림을 끝내주게 잘 그린다거나, 사이다처럼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내뱉는 성격이라거나 이 작가와 아는 사이라서 광고를 하려거나 하는 건 전혀 아닙니다. (정썸머 작가님 팬입니다!)




출처: 다음 웹툰, 에스키스




그저 그들처럼 졸업하면 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할까를 고민하며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하던 평범한 조형예술 전공 미대생이었습니다.

출처: 다음 웹툰, 에스키스



졸업해서 미술을 한다는 건 대학원을 가든, 작업을 하든 사실상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써야 한다는 의미가 맞습니다. 그래서 전업작가로 살고 있는 후배에게 존경을 표하는 이유도 그것이며, 조형예술과를 졸업하였지만 디자인을 하겠다고 선택했던 이유도 그것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저는 졸업 이후에 어떻게 살지도 걱정이었지만, 발등에 떨어진 더더더더더더더더 큰 걱정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바로 졸업이었습니다.


보통 미대생들은 자신의 작업을 교수님들께 설명하고 작업의 의도와 작품의 구성이 타당성이 있다고 느껴져야 졸업심사를 통과하게 되는데, 남들은 다 붙는다는 졸업심사를 저.만.혼.자.떨.어.졌.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정말 인생이 끝난 것처럼 절망적이었지요. 그러나 이내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오기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오기가 생기더군요. 졸업장 따위 없이도 나는 꼭 성공해 보이겠다고 주먹을 꼭 쥐었었더랬지요. 그러나 그때의 저는 아직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하고 싶은 것을 찾겠다며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었지요. 그래서 일단 부딪쳐서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지금 내가  디자인을 배워두면 나중에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도움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주 작은 디자인 회사의 시작부터 함께하게 되었고, 많은 기쁨과 아픔들이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그 회사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얻고 지금의 제 회사인 스트레스컴퍼니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트레스컴퍼니의 첫번째 상품, 쌍심지를 켜고 스트레스를 태우는 분노캔들



뒤돌아서 생각해봐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학교 이름 때문에 덕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 타이틀보다는 오히려 디자인이라는 무기를 배워뒀던 것이 저한테는 더더더더더 큰 힘이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8년 만에 졸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던 것은 학비를 대주셨던 부모님께 학사모를 씌워드려야겠다는 보은의 마음과, 방황의 연속이었던 저의 작업에 마무리를 짓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유학을 가려니 다시 학부를 새로 하고 싶진 않아서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흘러 결국 계획했던 유학은 가지 못했지만,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가야겠다 싶었을 때 지원할 수 있게 되어서 졸업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다 보면 미대를 나와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건 바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다고 느낄 때였는데요. 학교 다닐 때 나만의 철학을 담은 작업을 하겠다며 나라는 인간에 대한 고민과, 세상에 대한 고민과, 내가 말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고민까지 온갖 방황과 삽질을 두루두루 겪었다 보니 인생을 살다가 어떤 문제가 닥쳐왔을 때, 남들 다 하는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더군요. 그게 왜 때문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미대 다닐 때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작업을 하겠다고 항상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는 연습이 되어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미대에서는 그림을 더 잘 그리도록 연습하는 드로잉 수업도 있지만, 그림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수업이 더 많습니다. 좋은 작업을 한다는 것은 그림을 실제와 똑같이 그려낸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수업들은 보통 어떤 주제를 준 후,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표현한 후 발표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습을 통해 그와 같은 사고 과정이 익숙해지는 고학년이 되면 온전히 자신의 생각을 작업으로 표현하게 되지요.


제가 다녔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학년 때 파운데이션이라는 과정을 1년 내내 했습니다. 그때는 대체 왜 골판지로 오렌지를 만들어야 하고, 돌덩이를 깎아서 작업을 해야 하는 거냐며 구시렁대었지만, 며칠 밤을 새우고 나면 어느새 우리들의 손에는 골판지와 오공본드로 만든 탱글탱글한 오렌지가, 멋진 돌조각이 놓여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철사로 뜨개질도 해봤고, 종이로 구두도 만들고, 알루미늄 고리들을 엮어서 가발도 만들고, 고무판으로 건물도 만들어봤네요. 하하.(사진이 남아있지 않아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 많은 과제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는 충격과 모험이었는데, 그건 말 그대로 자신이 생각하는 충격과 모험에 대한 경험을 작업으로 표현하는 과제였습니다. 그때 우린 정말 온갖 충격적인 짓들을 서슴지 않고 감행했었는데, 그 과제를 위해서 추운 겨울에 여름옷 입고 등교하기, 삭발하기 등은 오히려 무난한 편이었고, 수업시간에 서서 오줌을 쌌던 언니와 화장실 변기에 밥을 비벼먹었던 친구의 이야기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네요...(잊고싶...)



파운데이션 과정에서 만드는 작업들의 예 / 출처: 한국예술종합학교



충격과 모험 수업에서 저는 전교생이 보는 학교 게시판에 익명으로 제 자신을 디스 하는 글을 올리는 사이버 테러를 감행했었습니다. 의도적으로 쓴 악의적인 글에 동기들이 남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두둔해주는 답글을 보며 얼마나 뿌듯했었는지 모릅니다. 씨익 :-)


그때는 그저 과제니까 이게 나중에 무슨 도움이 될지 아닐지도 모르고 그냥 해내기에 급급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러한 경험들은 어디서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오로지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시간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는 스타트업을 하는 제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디자이너이자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티스트입니다.


데쓰노트를 만들어서 경찰서에 갖다주겠다고 만든 스팸전화번호부



사장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스트레스컴퍼니를 구상했던 것도, 나를 화나게 만들었던 스팸문자를 모아서 복수를 하겠다며 데쓰노트처럼 스팸전화번호부 책을 만든 것도, 스트레스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서 태워버리겠다며 분노 캔들을 만든 것도 전부 나에게 예고 없이 닥쳐온 문제들을 남들이 다들 하는 방법이 아닌 나만의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해보고자 접근한 덕분에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대학 때 수없이 연습해왔던 바로 그것들을 제 인생에 적용한 것이지요.


그러나 디자인은 지금의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뿐, 제 생각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또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출처: 다음 웹툰, 에스키스



자, 그럼 이제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지금 누군가 제게 "미대를 졸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긴 한 걸까?"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겠습니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어

 

그러니 모든 미대생 여러분, 지금 내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해하고 있다면, 그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는 엄청난 문제 해결 능력을 믿길 바랍니다. 당신들이 미대를 입학하기 위해 공부와 미술을 병행해가며 고생 고생했던 시간,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과제를 위해 재료비를 써가며 남들과 다른 나만의 작업을 만들고자 고민했던 시간들은 절대로 헛되지 않았으며, 앞으로 살아가는데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니까요. 미대를 졸업했다는 것은 앞으로 인생을 살면서 어떤 황당한 일이 닥치더라도 당신만의 방법으로 멋지게 해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미대생들을 응원하겠습니다.







스트레스를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 

당신을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를 창의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당신의 마음을 디자인합니다. 

매달 마음을 나누는 모임을 진행합니다. 함께해요. 

www.stresscompan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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