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 갓 메일, 1998
여름엔 팥빙수, 겨울엔 붕어빵처럼 계절이 바뀌면 찾게 되는 음식처럼 찾게 되는 영화가 있다. 겨울이면 꼭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는데, 특히나 유브 갓 메일을 가장 좋아한다.
올 겨울도 유브 갓 메일을 보았다. 어쩐지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도시의 풍경을 낯설게 느끼면서. 90년대의 뉴욕은 지금의 도시보다도 아날로그 풍의 멋이 한껏 담겨있어서 오늘날보다도 더 멋스럽다. 활기차고 아름다운 영화 속 음악들은 또 어떤가. 멕 라이언의 싱그러운 미소와 톰 행크스의 능청스러운 유머는 어떻고. 그래서 이 영화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코로나도, 2021년도, 겨울도 없이 90년대 어느 시점의 뉴욕에 놓인다. 몇 번을 반복하고 보니, 영화 속에 나의 추억도 함께 쌓여서 괜스레 코 끝이 찡할 때도 있다. 이 맛에 여러 번 보는 것도 같다.
이제는 인터넷은 차치하고 와이파이가 너무나 만연한 시대지만, 구식 애플 컴퓨터가 등장하는 영화 속 화면을 보고 있자면 두 주인공의 필담이 그저 반갑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인터넷이라고 하는 모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허허벌판과 다름없는 비 물리적 공간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실체로 이어진다는 아이디어의 착상 자체가 다분히 낭만적이다. 현실 속에서는 적이나 다름없는 관계이지만 어찌 사람 관계가 그리 단순 명료할까. 그 기저에는 형언할 수 없는 매력과, 현실적인 삶의 무게 따위가 단짠단짠으로 얼기설기 얽혀있지만. 뉴욕이라는 도시를 사랑하는 캐서린(멕 라이언)의 가벼운 발걸음과 조(톰 행크스 분)의 그윽한 눈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로맨스 필터를 입어버린다. 초록의 도시가 주는 산뜻함이 절로 밀려든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불가능과 가능 값을 넘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필연이란 건 없다. 그 사이사이에 우연을 가장한 각자의 깨달음과 나아감이 한 땀 한 땀 펼쳐지다 원점에서 다시 만나게 될 뿐. 여느 삶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세월을 더한다 해도 원형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사랑스럽다. 경쾌하다. 결국에는 공간 위에 펼쳐지는 삶을 노래하고 있으므로. 어쩌면 내가 도시를 사랑하는 값에는 노라 에프런이 그려낸 도시의 풍경에 대한 환상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나는 평생에 걸쳐 몇 번의 계절 동안 숱하게 변함없는 순간에 기꺼이 놓이리라. 귀여운 알전구를 장식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