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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예 Oct 08. 2022

헤어질 결심을 생각할 결심

사랑, 그 파괴성에 대하여

생물학을 공부하다 보면 생명의 발생 단계에서 apoptosis라는 개념이 나온다. Apoptosis를 우리말로 바꾸면 자멸인데, 그럴싸한 말을 적나라한 말로 바꾸면 자살이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고 자궁에 착상이 되어 자리를 잡기까지도 힘겨운 여정이지만, 수정란은 자궁 밖으로 나가기까지 할 일이 태산이다. 동그란 수정란은 무수한 체세포 분열을 통해 장차 하나의 개체(아기)가 될 토대를 만든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암세포에서도 마찬가지로 벌어진다. 암세포도 무수한 분열을 통해서 제 크기를 키워나가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그러면 대체 암세포와 수정란이 뭐가 다르기에 하나는 사람을 집어삼키는 질병이 되고, 하나는 새로운 사람을 세상에 내어놓는 걸까?


여러 근원적인 차이가 있을 텐데 apoptosis도 이때 등장하는 차이 중 하나다. 수정란은 무수히 분열도 하다가 일부의 세포는 자살을 한다. 대표적인 게 손이다. 원래는 한 뭉텅이에 불과했던 손은 그 사이사이에 있는 세포들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다섯 손가락이 만들어진다. 제대로 세포자멸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물갈퀴를 달고 나왔을 것이다.


어쩌면 사랑의 결실이라고 불러도 좋을 생명의 탄생의 순간인데, 세포자멸이라고 하는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동반되는 것이 자못 모순적인 것도 같다. 그러나 사랑은 탄생과 맞닿아 있는 만큼 파멸과도 가깝다. 파괴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과 서래의 사랑은 다른 속도와 방향을 가진다. 속도와 방향이 다르면 함께 갈 수는 없겠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분명히 교차하게 된다. 서로가 사랑이라 입을 모아 말해도 좋을 순간은 필히 찰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순간이 짧다는 것이 그 순간의 무의미함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겁 없이 사랑이라고 하는 거센 파도에 몸을 흠뻑 적신 해준과 서래는 이후로 서서히, 각자의 방식으로 파괴되어 간다. 극 중에서 해준은 떠나며 자신이 서래로 인해 붕괴되어 버렸음을 시인한다. 그러나 해준을 붕괴시킨 것은 서래가 아니라 그가 품은 사랑의 일면, 그러니까 사랑의 자기 파괴적인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다만 자기 파괴적인 사랑의 모양은 형태로서 보이지 않고, 사랑의 대상인 서래는 눈앞에 있으므로 해준으로서는 자기 붕괴의 원인을 그녀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것이기는 하니 서래 역시 주범은 아니라도 공범쯤은 되겠지만.


그렇게 현실로 도망친 해준의 삶은 평이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번 해풍을 맞은 금속과도 같은 마음은 군데군데 녹슬어 간다. 그러니 서래가 그의 삶에 다시금 등장했을 때 잠잠했던 마음속에는 드높은 파도가 일었을 것이다. 서래는 사랑을 동반하고, 사랑은 파멸을 동반하니, 해준의 마음속에서는 두려움이라는 풍랑이 거세게 일기도 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았다면 마음은 그저 고요한 수면에 불과했을 것이나 이런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펄떡이는 심장은 삶의 징명한 증표다. 죽음처럼 잔잔한 마음에 지탱하듯 살던 사람은 머리로 제아무리 사랑의 파괴성을 안다 하여도 약동하는 생명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서래와 해준의 사랑은 그 방향도 속도도 맞지 않으므로 거대한 시차를 남길뿐이다. 그리하여 서래는 물리적인 실체로서의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른다. 해준의 마음속에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아 그의 일생 내내 두고두고 각인되고야 말도록. 이 과정에서 해준 역시 속절없이 파괴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파괴로부터 도망하기 위해 서래를 떠났으나 결국 모든 과정은 궁극적인 무너짐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긴 우회로였던 셈이다.


헤어질 결심이 이토록 긴 여운을 남기는 까닭은 무엇일까를 두고 오래 생각하였다. 그것은 아마 우리 모두가 사랑의 파괴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분명 많은 것을 이룩하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무너뜨린다. 가장 크게는, 무엇보다도 스스로를 파괴시킨다. 하릴없이 마모되고 녹슬고 갈려나간다. 부지불식간에. 그러나 스스로가 파괴되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까지, 아니 알아차린다 하여도 사랑이라는 감각에 마취되면 그 붕괴를 외면하고야 만다. 내가 산산조각이 날 줄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삶의 속성을 생각하면 극히 자연스럽다. 생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것 사이에서 세워지고 스러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하여 완전히 붕괴되었을 때 완성이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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