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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르니스트 Dec 24. 2023

글쓰기 좋은 질문 642

하루에 30분씩 쓰기

    글을 쓴다고 마음을 먹은지 한참 되었다. 하지만 회사와 집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글을 뽑아내기는 어려웠다. 손끝에서 나오는 것은 언제나 될법하지도 않은 영업전략이나 상품기획, 혹은 꼴같잖은 상사에 대한 뒷담화였으니까. 그런 걸 궁금해할 사람은 없을게 뻔했다. 그런 건 철수도 하고 영희도 하는 일 아닌가. 회사에서 하루 종일 영업전략 짜느라 지친 철수가 뭐가 궁금해서 내가 영업전략 짰던 글을 보고 싶을까. (물론 그 와중에 명작을 뽑아내는 '미생' 같은 작품도 있다. 하지만 미생이 오피스 환타지라는 것은 모든 회사원이 다 안다.)

    어제와 오늘의 일과가 다르지 않았고, 다가올 내일의 일상이 오늘과 다르지 않을게 명백했다. 인간의 뇌는 익숙한 걸 편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매일이 똑같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죄로 인해 나의 뇌는 그 똑같은 매일을 반갑게 받아들일 게 분명했다. 작가(지망생)으로서는 최악의 조건이다. 세상을 타인과 다르게 발견하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일인데,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한 셈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머릿속이 건조해졌다. 하얀 워드문서를 마주하는 일이 두려워지는 것은 끔찍한 자기 발견이었다. 어제랑 똑같이 살면 인생이 바뀌는 게 없을 거라는 인터넷 명언이 가슴을 후벼팠다. 뭐라도, 뭐라도 다르게 살고 싶었다. 이제 한 해만 더 지나면 '반 구십살'이었으므로. 여기서 열 살만 더 먹으면, 이십 대의 내가 '와, 이제 곧 환갑이시네' 했던 형님 누님들의 자리를 내가 꿰차게 될 것이었다. 그때가 왔을 때,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통할까. 후배들한테 '내가 세상에 왔던 흔적을 남기는 데는 책 쓰는 것만큼 좋은게 없다'며 허세 부리던 기억을 가슴 아프게 새김질하면서.

    그러다 책장에 꽃아놓은 책 하나가 뒷통수를 치고 갔다. '글쓰기 좋은 질문 642'라는 책이었다. 소설작법 배우겠다고 참고할 책을 찾다가 발견한 책인데, 모 사이트에서 '작법서라기보다는 아이디어로 쓸만한 소재들이 사전처럼 배열된 책이다'라고 소개되어 냉큼 들였던 책이다. 느근한 일상에 매몰되어 글감이 바스락대는 마른 나뭇잎 수준으로만 남은 나에겐 좋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했기에.


    이제서야 그 책을 다시 꺼내들 생각이 든 것이다.


    이건 사실 책이라기보단 그냥 노트같은 거다. 샌프란시스코의 글쟁이 35명이 모인 '그로토 Grotto'라는 작가집단(?)이 어느 날 갑자기 '야, 글감 642개를 한 번 모아보자'라고 해서 이틀만에 완성한 리스트다. 펼쳐보면 '뭐 이딴 질문을 글감이라고 던져놨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작가의 세계에서는 그냥 인턴도 뭣도 아니고 '취업준비생' 신분이다. 글감이 642개나 모여있으면 그중엔 보석같은 영감을 주는 것도 분명 섞여 있을 것이다. 그걸 솎아내는 것은 분명 작가지망생의 몫이다. 취업게시판에서 좋은 일자리와 다단계 불법 사기업체를 구분해 내는 것이 취준생의 몫이듯.

    그래서, 이 노트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글감을 골라 매일 삼십분씩 글쓰기 트레이닝을 하기로 했다. 삼십분이 지나면 글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더라도 과감히 그날의 글감을 덮는 규칙이다 - 연습하는 글감에 얽매여 시간을 낭비하면 그 역시도 낭비일테니.

    혹자는 일기를 쓰라고 하던데, 내가 일기를 쓴다면 '회사 컴퓨터를 켰다 - 일을 했다 - 점심을 먹었다 - 다시 일을 했다 - 퇴근 후 아이랑 놀았다 - 잤다' 밖에 없을테니 그건 적절한 습작방식이 아니었다. 나를 잠시 다른 세상에 던져놓을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나에겐 필요하다. 이 생경한 트레이닝이 나를 언젠가 작가의 세계에서 인턴사원으로 만들어 줄 꺼라고, 일단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이 매거진은 그 기록이다. 누군가 들어와서 이 매거진을 보고 자신도 매일 삼십분 글쓰기를 시작한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성과일 것이다. 어느 출판사 직원분이 들어와서 이 매거진을 보고 '오, 한 번 글 써보시겠어요'라고 해주시면 로또일 것이다. 여기서 모아놓은 글을 추려서 어디 공모전에 출품했다가 당선이라도 된다면 그건 세칭 '대박'일 것이다. 어쨌든 어제와 다르게 살아보려는 이 시도가 불러올 변화를 한 번 즐겁게 목도해보고자 한다. 인생 한 번이니까, 뭐라도 해봐야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꺼 아닌가.



글쓰기 좋은 질문 642개에 '더 좋은 질문' 712개를 추가 구성으로 주고 거기에 Creative Note (분명 안쓸 것 같지만) 까지 덤으로 준다. 홈쇼핑급 역대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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