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마라톤을 뛸 준비가 되어 있나요

글쓰기라는 가없는 트랙에서.

by 게으르니스트

지난 주부터 목요일마다, 육아휴직을 하고 집에서 홀로 아들을 보고있는 아내에게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해지는 시간이다. 브런치에서 마련한 카카오 크리에이터스 스튜디오 세션이 있는 날이니까.


항상 "하고 싶은 것을 하라"며 응원해 주는 아내이지만, 갑갑한 집 안에서 아직 말문도 못 뗀 11개월 아들에게 혼문혼답하는 시간들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스튜디오에 몇 번 나간다고 해서 금새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닐텐데, 아들내미의 칭얼거림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남편의 퇴근을 더 기다리고 있음을 어찌 모를까.


그 미안함을 무릅쓰고서도 세션에 참석한 것은, 어느새 밥술을 떠넣듯 자연스러워진 반복된 일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만히 앉아 글쓰기에 집중할 수는 없어도, 야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느 새 시침이 9시를 지나고 있어도,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글을 쓸꺼야'라는 독기를 빼지 않으려는, 나름의 발악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세션에 참가를 시작했던 처음의 결의를 안고, 어느 새 한 번 와봤다고 익숙해진 '아그레라운지'로 들어섰다.


오늘은 캐릭터계의 미생 니니즈가 등장.
아직은 카카오프렌즈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얘네들도 장그래처럼 한 몫 하는 날이 오겠지... 물론 그것은 카카오의 예산담당자에게 달린 일이다.

오늘 강연에 나선 분은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라는 책을 내신 김은경 님이었다. 죄송하지만 오늘도 뉘신지 사전에 안 찾아보고 들어왔다. 그래도 두 시간 동안 강연자의 이야기로 강연자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사전에 서치해서 선입견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라는 되도 않는 변명 ㅡ.ㅡ 과 함께 자리에 착석했다.


세션 운영하시는 롤리님이 스크린에 그림자를 드리우셨음. 크리에이터스 스튜디오의 앞날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 아.. 아니..
내가 덧글까지 붙여서 샌드위치 두 조각 ! 외쳤는데 흙... 그래도 어피치 상무님은 배신없이 함께했다.

세션 오프닝을 담당하시는 롤리님의 재담을 들으며 준비된 간식을 처묵대는 동안, 지난 번 세션 후기를 올리는 SNS이벤트에서 떡하니 당첨되었다는 발표 ! 허허허... 이려러고 후기를 쓴 것은 아닙니다만 애써 선물을 마련해 주시니 감사하외다 카카오.

오늘 또 후기를 쓰는 것은 절대 상품을 바라고 쓰는 것은 아니고 컨텐츠 제작 활성화에 노력하시는 카카오 분들의 열정에 탄복하고 또 탄복하며 바치는 헌사라고 받아주시길 바라옵니다만 그렇다고 다음 주에도 또 상품을 주신다고 하면 그 따뜻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지는 않겠소이다... (주절주절 횡설수설 ^0^)


후기 이벤트 상품인 리틀 튜브 필로우. 퇴근 후 나자빠진 나의 모습을 형상화한 듯 해서 친근감 + 1

오늘 강연자인 김은경 님 등장. 김은경 님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하다가 작가로 데뷔하신 케이스란다. 주제는 '에세이 쓰기'.

컨텐츠의 홍수 속에서 '좋은 글, 잘 팔리는 글'을 집어내는 편집자로써의 감각과 노하우는 '좋은 에세이를 쓰는 법'에 분명 맞닿아 있었을 터. 좋은 경험이 좋은 기회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생각은 어떻게 에세이가 되나? 라는 질문. 다 똑같아 보이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움직이느냐는 질문.

은경 님의 강연은 '생각은 어떻게 에세이가 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부터 시작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 어쩌면 글쓰기 미생들이 넘기 힘든 가장 큰 벽인 '글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에서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같은 레퍼토리들이 은경 님 뒤의 빔프로젝터에 둥실 떠올랐다.


[글을 쓸 시간이 없다. 글을 쓸 소재가 없다. 내 글은 재미가 없어 쓰기 힘들다. 쓰기 힘들다. 쓰기 힘들다. 쓰기 힘들다.]


글을 쓰지 못하고 밤낮으로 괴로워하는 우리의 익숙한 고뇌(?)들. 글 쓰려 책상 앞에 앉은 내 정신과 마음 속에 월급날 카드청구서마냥 당연스레 날아드는 그 장애물들을 향해 은경님은 돌직구로 솔루션을 날렸다.


"하루에 조금이라도 쓰세요. 자신이 잘 아는 걸 쓰세요. 자신이 잘 아는 단어로 쓰세요. 남한테 보여주세요. 그러면 글이 즐겁고 재미있어 집니다."


쉬운 말로 옮기면 이렇다.


"핑계대지 말고 꾸준히, 아는 척, 허세부리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쓰세요. 알지도 못하는 거 멋지게 쓰려니까 재미가 없죠. 그렇게 쓰면 오글거려서 남들한테 어디 보여주겠어요. 보여주지도 못하는 글을 어디서 언감생심 출판을 노리시나요."


우문현답이라고. 재미없게 쓰니까 재미가 없는 거였다.

하아. 세상의 진리는 항상 쉬운 법인데,이렇게 남한테 두드려 맞듯이 듣지 않으면 좀처럼 깨닫기 쉽지 않다.


지금 나는 회사에서 밥벌이하기 위해 하루에 최소 여덟 시간, 13년 넘게 사무실에서 일해오지 않았던가. 글로 밥벌이를 하게 되려면, 회사원으로 스스로 밥벌이하게 된 지금에 이르는 시간 만큼이나 긴 훈련의 과정이 원고지 위에서 필요할 것이다. 그 각고의 시간을 마라톤에 비유하는 것은 낡아 보일테지만, 자기 페이스와 꾸준함 없이 결승선을 통과할 수 없는 마라톤과 글쓰기는 닮아있다. 글로써 밥벌이를 하겠다면서 매일 조금씩 자신의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면, 출발선 앞에서 한 발자국도 떼지 않은 마라토너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은경 님의 솔루션에 특별한 'One more thing'이 있지는 않았지만, '알면서도 왜 못해요 ?'라는 남 부끄러운 깨달음을 주는 데는 탁월한 한 방이었다. 그렇다. 관성으로 흘러가는 잔잔하지만 아둔한 일상에는 그런 짱돌같은 원 펀치가 파문을 일으켜 줘야 한다.


다 제쳐놓고, 사실 (얼마 전까지) 편집자가 "책 팔고 싶으시면 이렇게 하시라구요 !"라고 팁을 주는 데 이보다 확실한 코칭이 또 있을까. 후후.


니가 읽어도 재미없는 글을 남한테 주려고 ? 그거 민폐야...

크리에이터스 스튜디오 두 번째 날. 그동안 애써 외면했지만, 글을 쓰려면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진실들을 은경 님은 두 시간 동안 속사포처럼 쏴대고 강연을 마쳤다. 머릿속으로는 '글을 써야지. 글을 써야해'라며 닥달해도 실은 뒷걸음치던 낡은 다짐들은 그 속사포 사격에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다.


그래. 걸레가 된 참에 그냥 그 낡은 다짐은 내다버리고, 새 다짐을 하자. (다짐이 다짐으로 끝나면 다시 속사포를 맞아보자... 음... ?ㅡ.ㅡ)


그렇게 두 번째 크리에이터스 스튜디오를 마치고 나는 아그레라운지를 나섰다.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이 곳을 찾아왔던 보람이 아주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니까 '아주 조금' 보람 있었다고 표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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