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했으나 떨어진 장학금
정말 오래간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동안 여전히 유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영국 쪽을 썼는데 지원한 대학교는 모두 합격하긴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동안 환율이 너무 올라버려서 학비가 천정부지로 올랐다는 것이다. 영국은 유학생 학비를 매년 올리는데 이번에는 그 영향이 더 컸던 것 같다. 우선 내가 지원한 학교는 엑시터, 글래스고, 더럼, 브리스톨 등 총 4개 학교였고 모두 오퍼를 받았다. 4개 학교가 모두 장학금을 지원하게 해놓았지만 더럼은 1차 장학금에 떨어졌고 브리스톨은 대학원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에 떨어졌다. 이렇게 장학금을 단 한푼도 받지 못할 것이라는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돈이 엄청 많이 들어가게 생겼다. 앞에 3개 학교는 모두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으로 썼고 마지막 브리스톨은 데이터 사이언스로 썼다. 학교 자체는 브리스톨이 제일 마음에 들지만 문제는 브리스톨 지역의 생활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맨체스터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활비가 들어간다. 처음에 붙고 나서 사설 기숙사를 알아봤는데 스튜디오(주방딸린 원룸)으로 살으려면 1주에 330파운드 정도가 들어갔다. 한 달이면 1,200파운드가 넘어가니 환율이 오른 지금은 상당히 부담스럽다.
엑시터나 더럼 등은 브리스톨에 비해서 지역 물가가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이들 학교 역시 장학금을 받지 못했다. 작년에는 셰필드에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올해는 다 떨어지다니... 정말 우울했다. 브리스톨이 학비가 제일 비싼데 3만 5천 파운드 정도를 요구한다. 지금 돈으로 하면 7천만원이 넘는 학비다. 나는 1년에 학비만 7천만원을 넘게 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나하는 생각이 든다. 학비가 5천만원 정도였으면 별로 고민을 안했을 텐데 지금 학비와 기숙사 비용만 해도 1억이 들어가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석사를 졸업한 이후 바로 영국 현지 취업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영국은 이민법을 바꿔서 이제 석사 졸업생들에게 2년의 졸업비자가 아닌 18개월의 비자만 준다. 1년에 10만명씩 이민자를 줄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당장 유학생도 타격을 받는 것이다.
영국이 석사가 1년이기 때문에 내 나이를 고려하면 짧아서 좋고, 영어권 국가라 편한 것도 있고, 다른 유럽 내 이동도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과연 석사 1년의 가치가 그렇게 클까? 특히 지금 영국에는 중동권이나 인도애들의 유학이 상당히 많아서 클래스 안에 영국인 자체는 거의 없다시피하다. 내가 붙은 학교인 브리스톨은 Goin이라고 해서 따로 커뮤니티가 있다. 에브리타임이랑 비슷한 것으로 학교 내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할 수 있다. 거기서 확인을 해보니 올해 데이터 사이언스에 붙은 사람들의 99퍼가 인도 사람이고 나머지가 중국, 한국인이다. 7천만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서 인도 애들과 부대끼는 석사 생활이라니.. 사실 이건 브리스톨만 그런게 아니라 영국 다른 대학을 가든 캐나다를 가든 호주를 가든 다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인도 애들은 시작도 전부터 나에게 겁을 준다.
석사 1년에 학비와 생활비만 1억 넘게 들여서 간다면 어떻게 해야 의미있는 석사 생활을 보내는 것일까? 더럼이나 엑시터 등 다른 학교도 고려는 하고 있다. 브리스톨의 경우 내가 데이터 사이언스로 썼는데 사실 데이터에 대해 그렇게 잘 알지 못한다. 나는 당연히 이 학교를 떨어질 줄 알았는데 덜컥 붙어버려서 좀 충격먹었다. 도대체 내가 왜 붙은건지 모르겠다. 예전에 R이랑 파이썬을 하긴 했지만 데이터 사이언스 수업을 들으려면 이걸로 부족하니 이제와서 부랴부랴 공부하고 있다. 교수한테 메일을 보냈더니 프로그램 언어에 대해 미리 배울 필요는 없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많은 인도 애들을 상대하려면 사전 지식은 필수가 아닐까... 그리고 글래스고나 더럼은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으로 썼기 때문에 이쪽은 상대적으로 인도계열 애들이 훨씬 덜할 것 같다. 메디컬 계열은 인도가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유럽이 메디컬 쪽으로는 강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지 애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브리스톨로 가게 된다면 수많은 인도 애들에 치여서 한국 사람은 한국사람끼리 어울리면서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원했던 건 이런 생활이 아니긴 한데 학과 특성상 또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게다가 박사 유학을 가려면 돈을 또 모아야 하니까 1년이라도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은데 영국 취업이 18개월 내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국도 지금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서 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블로그만 보더라도 영국 석사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직장 못구한 사람도 봤다. 현지에 계신 한국분 말로는 영국이 그래도 아직은 박사 펀딩은 있는 편이라고 해서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무일푼으로 박사를 할 순 없으니 최소 몇 천만원이라도 더 모아놓고 하는게 맞는것 같다.
그리고 과연 영국이 정답일까? 라는 생각이 어제 자꾸 들었다. 장학금 결과 소식을 어제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장학금은 이제 다 발표가 났다고 한다. 나는 아무런 메일을 받지 못했으니 떨어진 것이다. 학비, 기숙사비, 생활비 등 해서 1억 3천에서 5천 정도 든다고 생각한다면 호주로 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 취업 사정도 호주가 더 낫기도 하고 대학 입학은 호주는 어차피 쉽고 과정이 2년이니 조금 나이를 먹긴 하지만 쌩기초인 나로서는 차라리 타과로 바꾸는게 이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영국이나 호주 둘 다 유학생이 일을 할 수는 있는데 호주가 임금이 더 세니 적어도 생활비 부담은 좀 덜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걸까? 차라리 국내 리턴이 맞는걸까?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머리만 복잡해진다. 어느 것 하나를 딱 밀고 나가면 좋을텐데 말이다. 브리스톨 디파짓을 곧 납부해야 할 것 같은데(그런데 이것도 보니 장학금 떨어진 사람들에 한해서 디파짓을 연기해준다고) 얼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