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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Nov 28. 2018

같은 형사지만 매번 다르다-배우 김윤석의 형사 연대기

(2018.10.19 작성)

<암수살인>이 개봉 2주만에 극장관객 30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주지훈의 날 선 싸이코패스 연기도 화제를 모으고 있지만 영화의 호평을 견인한 주인공이 김윤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형사 역할만 이미 수차례 연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식상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은 것은 매번 배역을 새로이 해석하고 그에 맞는 모습으로 변신해온 배우 김윤석의 노력 덕일 테다.



<범죄의 재구성>의 이형사  

일반적인 형사영화의 포메이션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주인공 형사가 있고 그 옆에서 어깨 역할을 하는 입이 험하고 몸싸움도 잘 하는 부하 형사가 있다. 그 옆에는 대체로 성실하며 얼굴도 좀 잘생긴 신참이 따라붙고 때로는 아주 명석하거나 혹은 푼수같은 여자형사가 합류하기도 한다. 줄곧 ‘주인공 형사’의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김윤석에게도 ‘주니어’ 시절이 있었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한국은행에서 50억원을 털어간 사기꾼 일당을 쫓는 차반장(천호진 분)의 옆에서 욕을 내뱉고 주먹을 휘두르는 ‘어깨’가 바로 김윤석이었다. 영화 내내 똑같은 츄리닝 바람으로 등장하는 이름도 없이 그냥 이형사라 불리는 조연이지만 아프다며 엄살을 피우는 사기꾼 얼매(이무식 분)을 을러메는 장면에서 김윤석이 던지는 리듬감 있는 대사는 최동훈 감독이 차기작 <타짜>에서 이 배우를 왜 중용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추격자>의 전직 형사 엄중호  

<추격자>는 ‘착한 놈’과 ‘나쁜 놈’의 대결이 아닌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에게 새롭게 다가갔다. 첫 주연작인 이 영화에서 김윤석은 그 중 ‘나쁜 놈’에 해당하는 전직 형사이자 출장안마업소 사장 엄중호 역을 맡아 총 6개의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손에 넣을 정도의 역대급 연기를 선보였다. 전작인 <타짜>에서 전국구에서 활약하는 전라도 출신 도박꾼 아귀를 연기하기 위해 서울말이 살짝 섞인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했던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엄중호 캐릭터에 접근할 때도 말투부터 고민했다. 엄중호는 사회 정의나 인간적인 연민 등은 아랑곳없이 순전히 ‘내 것’을 빼앗겼다는 이유로 지영민을 추격하는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다. 형사라는 전직과 지금의 어두운 생활, 그리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배우 김윤석은 부러 직선적이고 명령조의 말투를 연구해 사용했다고 한다.



<거북이 달린다>의 조필성 형사

<거북이 달린다>는 신출귀몰한 탈주범 송기태에게 소싸움에서 따낸 판돈을 털린 형사 조필성이 끈질기게 물고늘어진 끝에 그를 검거해내는 이야기이지만 사건을 추적하고 범죄자를 때려잡는 형사로서의 모습보다 다섯 살 연상의 마누라에게 늘 바가지를 긁히고 딸내미 학교 일일수업에 경찰차를 몰고 갈까 고민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배우 김윤석은 충남 예산의 어수룩한 시골 형사 조필성이 되기 위해 우선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마스터함은 기본이고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인물을 구현하기 위해 살을 찌우고 팔자걸음에 가깝게 터덜터덜 걷는 등 외적인 모습에 있어서도 꼼꼼하게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극비수사>의 공길용 형사

인터뷰에서 김윤석이 <극비수사>라는 영화를 두고 ‘소금만 살짝 찍어 먹어도 맛있는 백숙 같은 영화’라고 표현했듯 극 중 공길용 형사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의 모습에 가깝다. 부산 출신으로서 가장 편하게 힘을 빼고 구사할 수 있는 부산 말씨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배우 김윤석은 공길용 캐릭터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소신’을 꼽았지만 이는 형사로서의 직업적인 소신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딸을 유괴당한 부모의 심경에 공감해서 저절로 솟아나오는 인간적인 공감대에 가깝다. 이처럼 현실감 넘치는 1970년대의 형사다운 모습을 그려 내기 위해 배우 김윤석은 최불암의 드라마 ‘수사반장’ 속 형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준비했다고 한다. 펜과 수첩, 점퍼 하나 걸치면 그걸로 수사 준비가 끝나는 아날로그 시대의 형사 말이다.



<암수살인>의 김형민 형사

<암수살인> 속 김형민 형사를 두고 김윤석은 ‘이 세상의 파수꾼’이라는 표현을 썼다. 극중에서 김형민 형사는 취미로 골프를 치러 다닐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돈에 궁해 비리를 저지를 일도 없고 아내와는 사별하고 자식도 없는 사람이다. 오로지 ‘형사’인 것이다. 그런 만큼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함부로 욕을 하거나 쉽게 주먹을 휘두르지도 않는다. 같은 부산말을 쓰는 형사지만 <극비수사>의 공길용 형사가 유괴라는 한시가 급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뜨겁게 달린다면 이미 끝난 사건을 쫓는 <암수살인>의 김형민은 차갑게 사건을 관조하고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캐릭터를 구현하기 위해 가죽 잠바에 운동화 차림이 아닌 와이셔츠에 정장 재킷을 갖춰 입는 등 외적인 면에서부터 다르게 접근하려 했는데 김태균 감독의 말에 따르면 김윤석은 예전에 비슷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의상을 교체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8.10.1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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