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0 작성)
흔히들 이와이 슌지의 영화를 화이트 이와이와 블랙 이와이로 나누곤 한다. 아련하고 풋풋한 사랑 이야기를 아름답게 그려냈던 <러브레터>,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가 전자에, 그리고 어둡고 폭력적인 세계를 독자적인 화법으로 보여주었던 <릴리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피크닉> 등이 후자에 속한다. 말하고 움직이며 감독의 세계를 스크린 안에서 표현하는 매개체가 배우라 할 때,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는 주인공들 역시 빛의 뮤즈와 어둠의 뮤즈로 나누어볼 수 있지 않을까?
이와이 슌지의 뮤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 바로 아오이 유우이다. 블랙 이와이 작품에 속하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도 출연했지만, 주연을 맡은 <하나와 앨리스>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종이컵으로 급조한 토슈즈를 신고 교복치마를 나풀거리며 춤을 추는 마지막 발레 장면은 영화의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볼 가치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명장면이다. 흰 피부에 까맣고 단정한 눈썹, 웃으면 동그랗게 솟아오르는 광대뼈에 도톰한 입술, 어디 하나 모난 데 없이 고운 얼굴형까지 <하나와 앨리스>의 아오이 유우는 화이트 이와이가 지향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아주 간명하게 일러주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적인 빛의 뮤즈라 할 수 있다.
쿠로키 하루의 말간 옆얼굴이 오롯이 담긴 <립반윙클의 신부> 포스터를 보고 이와이 슌지의 신작에 아오이 유우가 다시 출연하는구나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얗고 깨끗하게 잘 빚어놓은 도자기 같은 얼굴에 수묵화용 붓으로 살짝 그려낸 것 같은 까만 눈썹,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는 쿠로키 하루가 아오이 유우의 계보를 이어 이와이 슌지의 지금을 함께 하는 빛의 뮤즈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한다. 데뷔시절을 이와이 슌지와 함께 했던 아오이 유우와는 달리, 쿠로키 하루는 연기를 시작한지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비롯해 수상경력만 해도 열손가락이 모자란 베테랑으로 이 작품에서 그녀는 복잡한 상황에 처한, 어쩌면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나나미라는 캐릭터를 특유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설득해낸다.
블랙 이와이 작품인 <피크닉>, 그리고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 출연해 이와이 슌지 어둠의 뮤즈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가 바로 Chara이다. 91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해온 싱어송라이터가 본업이며, 배우로서의 활동은 이와이 슌지와 함께 한 영화 두 편이 전부지만,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로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바 있다. 쌍꺼풀 진 큰 눈에 까무잡잡한 피부, 혼혈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뚜렷한 이목구비와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인상의 소유자로 이와이 월드의 빛의 뮤즈들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지녔다. 특히나 판타지적인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블랙 이와이로서의 이와이 슌지의 초기작의 초상과도 같은 배우라 할 수 있다.
<립반윙클의 신부>의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담아내는 배우가 바로 Cocco다. Chara와 같이 뮤지션이 본업으로 장편영화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쌍꺼풀이 뚜렷한 큰 눈에 시원하게 큰 입매, 다소 각지고 이국적인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 역시 Chara를 떠올리게 한다. 첫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연기 지도 없이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극 중 캐릭터인 마시로가 거식증에 시달리고 우울증이 심해져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는 Cocco의 실제 삶에서 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영화 후반부 빛의 뮤즈 쿠로키 하루와 어둠의 뮤즈 Cocco가 한 스크린에 같이 등장하는 씬은 이 영화의 백미이자 이와이 슌지라는 감독이 <립반윙클의 신부>을 통해 잔혹한 우화 같던 블랙 이와이, 그리고 아련하게 채색된 연서 같던 화이트 이와이를 함께 녹여 내어 다층적인 회색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2016.10.10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