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9 작성)
<완벽한 타인>이 개봉 6일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알려진 대로 2016년작인 이탈리아 영화 <Perfect Strangers(Perfetti sconosciuti)>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휴대폰을 통해 서로의 비밀이 공개된다는 기발한 설정이 관심을 모아 한국 뿐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미국, 독일, 카타르, 스웨덴, 터키 등 세계 각국으로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었다. <완벽한 타인>은 이야기의 큰 줄기부터 어느 쪽이 현실인지 아리송한 결말까지 원작 영화를 대체로 충실히 가져왔지만 한국적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달라진 부분도 적지 않다. 어디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 영화 <완벽한 타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축구 말고 골프!, 노팬티는 NO! 한국 정서에 맞췄다.
<완벽한 타인>에서 골프장 예약 메시지가 석호와 태수, 준모에게만 오는 바람에 영배가 나를 따돌리는 거냐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작에서는 축구의 나라 이탈리아 답게 이들이 골프를 치러가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하러 가기로 한 설정이었다. 얼버무리며 수습하려는 친구들에게 “너희는 골키퍼 없을 때만 나를 부르더라?”하며 투덜대는 대사가 있었다.
오프닝에서 수현이 남편 몰래 평범한 팬티를 야한 것으로 갈아입는 장면이 있다.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남편에게 기죽어 살지만 조금은 자유롭고 싶은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원작에서는 아예 팬티를 벗어버리고 노팬티 차림으로 외출한다. 결말에서 치마를 걷어 올리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한국 정서 상으로는 원작을 그대로 가져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2. 코미디를 올렸다.
극중에서 수의사인 세경은 전 남자친구로부터 ‘도와줘… 발기가 안돼…’라는 메시지를 받는다. 남편인 준모가 흥분해서 따지는데 실은 기르는 개를 교미시키기 위해 도와 달라는 것이었고 이에 세경은 개를 발기시키는 법을 원격으로 가르친다. 태연한 태도와 야릇한 손동작이 폭소를 유발하는 명장면이다. 원작에서는 수의사라는 직업과 전 남자친구로부터 연락은 그대로이지만 단순한 연애상담을 위해 전화를 한 것으로 개를 교미시킨다는 설정은 리메이크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다.
영화에서 가장 큰 웃음이 터지는 부분은 태수가 동성애자로 오해 받는 장면이다. 자신의 바람기를 무마해보려 휴대폰을 바꾼 바람에 오히려 된통 당하는 상황 전체가 우습지만 유해진 배우가 과장된 몸짓으로 동성 간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특히 많은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린다. 원작에서도 태수 역의 배우가 동성애를 묘사하는 몸짓을 하는 장면은 나온다. 그러나 그 행동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배 역의 배우가 이를 보고 상처받는 표정으로 대체한다. <완벽한 타인>은 원작처럼 결말에서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자 하지만 이를 일차원적인 코미디로 소모해버린 뒤에 이러한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들릴 리는 만무하다.
3. 여적여 구도가 없었다.
영화에서 예진과 수현은 싸구려 부엉이 조각품을 집들이 선물로 준비한 세경을 두고 뒤에서 험담을 한다. 세경이 부잣집 딸인 설정이라 일부러 싼 것을 골라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이러한 장면이 없다. 세경 역의 배우는 25유로짜리 유기농 와인을 저녁 초대 선물로 준비했지만 예진 역의 배우가 까다로운데 이걸로 괜찮을까 걱정하는 모습이 나오고 와인을 받아 든 친구들은 그 자리에서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만다.
‘김소월’이라는 친구와의 통화 도중 수현이 앞에서는 친한 척 하던 예진의 흉을 얼마나 봤는지가 밝혀지고 수현은 물을 쏟아서라도 순간을 모면해보려 한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애초에 ‘김소월’ 같은 친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수현 역의 배우에게 걸려온 전화는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의 컴퓨터 수리기사로 특별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는다.
극중에서 예진 또한 자신이 연사로 나선 강연에 세경만 부른 것을 두고 수현이 서운해 하자 똑똑한 척 하는 세경의 자존심을 꺾어 주려고 일부러 부른 거였다고 말한다. 이 또한 원작에는 나오지 않았던 장면이다.
4. 지역색을 넣었다.
영화는 34년전, 속초 영랑호에서 얼음낚시를 하던 소년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석호와 예진 커플이 준비한 집들이 음식 또한 닭강정, 물곰탕, 명태회무침, 아바이순대 등 속초를 대표하는 메뉴들이다. 석호가 속초에 위치한 콘도 분양에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는 설정도 나온다. 원작 영화에서도 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친구라는 설정은 변함없지만 이들의 유년시절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한국 리메이크작처럼 이들의 출신 지역을 특정하지도 않았다. 영화에서 이들의 고향을 속초로 정한 이유는 산과 바다가 함께 있는, 영랑호처럼 민물인지 바닷물인지 애매한 곳에 감독이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5. 수현-태수, 세경-준모 두 부부의 캐릭터가 바뀌었다.
영화에서 태수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보수적인 변호사고 그의 아내 수현은 남편에게 기를 못 펴고 사는 전업주부이자 문학도를 꿈꾸는 인물로 나온다. 원작에서도 이들은 변호사와 주부였지만 가부장적인 엘리트 설정, 그리고 남편에게 구박받는 문학도 설정은 리메이크 과정에서 더해진 것이다. 수현이 매번 울음을 터뜨리며 감정적으로 구는 모습 또한 원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각자의 비밀을 숨기고는 있지만 보다 수평적인 관계로 나온다.
극중 세경은 수의사이자 부잣집 딸로 이런저런 사업을 하다 망해먹은 바람둥이 준모와 결혼하며 그에게 레스토랑을 차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준모가 앞에서는 장모님 칭찬을 하다가 뒤에서는 욕하는 모습도 보여진다. 원작의 경우, 남편은 택시기사이며 아내 쪽이 부유하다는 설정도 없다. 그가 바람을 피워 임신시킨 여자 또한 레스토랑 매니저가 아니라 택시회사 차량 배차 담당자로 나온다. 남편 쪽이 두 여자와 바람을 피운 나쁜 놈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아내가 차려준 레스토랑에서, 심지어 매니저와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한국 리메이크 쪽이 더 죄질이 나쁘다 하겠다.
(2018.11.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