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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Dec 22. 2018

<마약왕>이두삼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이황순은 누구인가

(2018.12.11 작성)


<마약왕>은 마약도 수출하면 애국이 되던 1970년대, 필로폰 밀조로 마약왕의 자리에 오른 이두삼의 성공과 몰락을 그려낸 영화다. 극 중에서 송강호가 분한 주인공 이두삼의 모델이 된 인물이 있다. 바로 1980년 총기난사사건으로 유명한 전설의 마약왕 이황순이다. 한국 마약왕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는지 옛날 뉴스를 통해 알아보자.


이황순이라는 이름이 처음 일간지에 등장한 것은 1972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상선을 포함해 외항선 12척이 가담한 밀수사건을 적발해 19명을 체포하고 28명을 수배한 사건이었다. 이때 주요 밀수품은 금괴, 시계, 다이아몬드 등으로 마약 밀조 및 유통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1970년대 동아시아 마약시장이 소비를 담당하는 일본, 제조를 맡은 한국, 원료를 공급하는 대만 이렇게 삼각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만상선이 가세한 밀수조직이  마약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었을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추정된다. 당시 38세의 이황순은 밀수단의 주범으로서 징역 4년, 벌금 1433만원을 선고받고 마산교도소에 수감된다.



이후 이황순이 다시 뉴스에 출현한 것은 3년여의 시간이 흐른 1975년 12월의 일이다. 부산지구 밀수합동수사반에서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밀수조직 14개파 189명과 폭력배 2개파 135명 등 총 324명을 구속한 사건이었다. 재미있게도 검거된 밀수조직들은 각기 특정 분야가 있어서 국제스타파는 보석, 한라파는 녹용, 배치기파는 금괴, 종복파는 전기제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했다고 한다.


‘황순파’는 당연히 필로폰이었는데, 합동수사반에서 부산시 남구 민락동에 위치한 이황순의 집을 급습해 시가 2억원 이상의 필로폰 완제품과 반제품을 압수하고 공범 3인을 구속했으나 두목인 이황순은 검거하지 못했다. 72년에 4년형을 선고받았으니 아직 수감 중이어야 할 이황순이 세상에 나와 이미 마약왕의 자리에 등극해 버린 것이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복역 1년 만에 교도소 의무과장과 보안계장을 매수해 폐결핵 진단서를 가짜로 만들어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고 한다. 75년 당시 이황순을 놓친 이유 역시 치안본부 경찰들이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고 사전에 정보를 흘려 도주를 도왔기 때문이었다고.



이황순이 전설적인 마약왕이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은 필로폰 밀조 규모 면에서 국내 최대 수준이었고, 품질 또한 완벽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검거 과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대저택의 위용이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80년 3월 부산지검 특수2부는 이황순의 거처에 대한 제보를 받고 그의 저택 앞에서 잠복한다. 저택이 워낙 외진 곳에 위치해 감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수영만에 보트를 띄워 놓고 망원경으로 지켜보았다고 한다. 사흘에 걸친 잠복 끝에 승용차로 귀가하는 이황순을 확인하고 자택을 급습하는데, 수사관 십여명이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자 이황순은 레밍턴 5연발 라이플을 들고 나와 모두 쏴 죽이겠다 위협하며 맹견 4마리를 풀어 놓고 경찰과 대치한다.


무장경관 50명을 동원해 집을 포위하고 셰퍼드 1마리를 사살하자 이황순은 엽총을 난사하고 돌과 빈 병을 던지며 저항한다. 자수를 권유하려 형을 들여보내 설득하지만 자살하겠다며 소리를 지르다 엽총을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형의 제지로 오른쪽 어깨 관통상을 입고 이때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된다.


물증이 될 필로폰 색출을 위해 자택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저택의 실체 또한 범상치 않았다. 수영만이 내려다보이는 산중턱 고급 별장지에 위치한 이황순의 집은 장미꽃과 정원석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정원의 지하에 10평 넓이의 마약공장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필로폰은 제조 과정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수영천 하구의 폐수와 인근에 위치한 목재회사 저목장에서 나는 악취로 이를 감출 수 있었다고 한다.


저택 구조 역시 마치 철옹성 같아서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도로 입구를 철책으로 막아 외부와 차단한 뒤, 다시 8미터를 더 올라가야 집 대문이 나오며, CCTV도 2대나 설치되어 있어 출입자를 원격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곳곳에 고성능 음파탐지 시설을 마련해 집 주위 2미터까지 접근하면 실내에서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수색을 통해 정원 지하실 외에도 경비실 지하에 1평 규모의 또다른 지하실이 확인되었고 2층 방 장롱 속에서 천장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 또한 찾아냈는데 이 곳에서 시가 3억원 상당의 필로폰 3킬로를 발견했다. 자택에서 발견된 물건 가운데 이채로운 것은 포장마차 리어카인데 마약 운반 시 위장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황순이 검거되며 오랜 기간 그가 마약왕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배후에서 비호해온 이들에 대한 수사 역시 이루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72년 가짜 진단서로 받은 형집행정지와 75년 밀수수사 정보 유출로 인한 도주 방조 등의 사실이 확인되었다.


부산 파견 근무 당시 이황순과 밀접하게 지냈던 보사부 마약과 감시계장을 서울에서 압송하여 이황순의 자택으로 데려가 현장 검증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보면 너무나 황당하지만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감시계장 김모씨가 수갑을 찬 채 도주하는 일이 벌어진다. 경찰 백여명을 동원해 수색하지만 그가 스스로 벗어 두고 간 수갑과 인근 전당포에 10만원을 받고 맡기고 간 롤렉스 시계만 뒤늦게 발견했을 뿐 도주한 감시계장은 끝내 잡아내지 못한다.   


어깨에 입은 총상을 치료하고 재판에 임한 이황순은 징역 15년형을 선고받는다. 불과 45세의 나이였다. 1981년 4월 형 확정에 대한 기사 이후로는 이황순의 행적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다. 다만 80년 검거 당시 이미 하루 6차례나 필로폰을 맞고 있던 중증 마약중독자였기 때문에 남은 삶이 평탄치 못했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수 있다.


옛날 신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마약왕의 모습은 여기까지다. 기사만으로는 궁금증이 채워지지 않은 마약왕의 삶의 궤적을 우민호 감독이 어떤 상상력을 더해 그려냈는지는 <마약왕>이 개봉하는 19일 이후 극장에서 확인해볼 수 있겠다.



(2018.12.11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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