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3 작성)
결전의 날이다. 2019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이틀 후로 다가왔다. 입시가 결코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일은 아니지만 살아가며 겪는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는 만큼 대학입시를 소재로 한 영화들도 적지 않다. 세계 각국의 대학입시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함께 만나보자.
배드 지니어스
고작 샤프심이 떨어진 것만으로 관객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영화가 있다. ‘컨닝’이라는 소재를 ‘케이퍼 무비’라는 장르와 결합한 독특한 기획으로 본국인 태국 뿐 아니라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베트남, 중국 등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배드 지니어스」다. 주인공 린은 가난한 형편 속에서도 ALL A를 놓쳐본 적 없는 천재다. 절친인 그레이스를 도와주려 시작한 컨닝은 그레이스의 금수저 남친 팟이 끼어들며 걷잡을 수 없이 판이 커진다. 컨닝 비즈니스가 유학자금 마련을 위한 동아줄이라 믿는 린은 미국 대입시험인 STIC에까지 손을 대기로 하고 또다른 우등생 뱅크까지 데리고 시드니로 향한다. 영화의 모티브가 된 SAT시험 부정사건이 한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인데다 린과 뱅크, 그레이스와 팟을 통해 보여주는 금수저와 흙수저의 사회상이 한국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한국 관객들도 쉽게 이입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엘리자의 내일
「배드 지니어스」가 부정행위를 경쾌한 케이퍼 무비로 풀어냈다면, 같은 소재를 두고 묵직하게 질문을 던져오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의 「엘리자의 내일」이다. 루마니아 영화라 낯설다 생각하기 쉽지만 극중에서 그려지는 루마니아 사회는 한국의 어제, 그리고 오늘과 쌍둥이처럼 닮았다. 젊은 날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로메오는 91년 루마니아가 형식적 민주화를 이뤄내던 때 탐욕을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살았기 때문에 패자로 살게 되었다 생각한다. 그래서 딸 엘리자는 선진국에 유학을 가 승자의 삶을 살기를 열망한다. 그런데 유학을 위해 졸업시험에서 고득점을 해야 하는 엘리자가 시험 전날 강간미수를 당한다. 원하는 점수를 얻지 못한 엘리자를 두고 로메오는 의사라는 직업과 인맥을 이용해 성적 조작을 하려 든다.
영화에선 성적 조작 외에도 아연할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청탁이 그려진다. 오싹한 것은 그 사이에서 돈이 오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무한대의 기호처럼 청탁은 오로지 청탁으로만 갚을 수 있는 지옥이다. 몰락한 지식인의 추한 초상을 두시간 내내 전시한 감독은 영화가 끝날 무렵에 가서야 희망이라 할 수는 없는, 다음 세대에 거는 옅은 기대 비슷한 것을 드러낸다.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
한국과 비슷한 듯 다른 나라 일본은 어떨까? 영화 「불량소녀, 너를 응원해!」에서 주인공 사야카는 전교 꼴찌인 금발머리 날라리다. 영화는 그런 그녀가 가부장적인 아버지로부터 딸들을 지켜낸 어머니의 헌신, 그리고 학생들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긍정하는 입시학원 강사 츠보타의 가르침에 힘입어 명문 게이오 대학을 목표로 노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로 전교 꼴찌를 게이오에 보낸 현역 입시강사가 지은 논픽션 에세이 “비리갸루 : 학년 꼴찌의 갸루가 1년 만에 편차치를 40 올리고 게이오 대학에 현역 합격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의 편차치란 일종의 표준점수 같은 것으로 극중 사야카가 기록한 편차치 30은 하위 2%에 해당하는 수치다. 영화는 너무 뻔하다 할 만큼 전형적인 성장드라마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지만, 마지막 씬에서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향하는 사야카가 분명히 나를 볼 것이라는 ‘믿음’으로 저 멀리서 뚝방에서 힘껏 손을 흔드는 츠보타 선생님의 모습에는 감동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억셉티드
여기 대학에서 모조리 떨어진 청춘이 있다. 부모님은 아들을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심지어 맹랑한 여동생도 나를 함부로 대한다. 짝사랑하는 여학생은 내가 떨어진 대학에 남자친구와 나란히 합격했다고 아주 신이 났다. 궁지에 몰린 주인공은 없는 대학을 만들어서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부모님의 의심을 넘기기 위해 가짜 홈페이지도 만들고 가짜 캠퍼스까지 만들었더니 전국의 대입 낙방생들이 몰려와 엉겁결에 진짜 대학교가 생겨 버렸다.
저스틴 롱과 조나 힐, 블레이크 라이블리 주연의 2006년작 「억셉티드」는 이렇게 다소 황당무계한 설정 하에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대학교를 세워버리게 된 주인공 바틀비는 커리큘럼에 대해 물어오는 학생들에게 오히려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를 되묻는다. 나는 팬케이크를 좋아해, 나는 여자를 만나고 싶어, 스피드를 원해 등 동문서답이 난무하지만 바틀비는 어떻게든 각자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 노력하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서로 가르친다. 조나 힐의 활약에 힘입어 코미디 영화로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하는 작품이지만, 주인공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배를 잡고 웃다가도 교육이란, 또 학교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해준다.
(2018.11.13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