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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Jan 01. 2019

2018 한국영화 대마불사의 신화는 깨졌다

(2018.12.29 작성)

연말 텐트폴 영화들의 몰락

송강호 혼자 고군분투한다는 평 속에 ‘삼일 천하’를 누리고 추락해버린 <마약왕>, 변칙 사전개봉으로 10만명을 미리 동원했으나 개봉 후 열흘이 지나서야 간신히 100만 관객에 턱걸이한 <스윙키즈>, 아직 개봉 첫 주지만 아쉬운 스코어를 기록 중인 <PMC : 더 벙커>까지 12월 연말시즌에 맞춰 야심차게 개봉한 각 배급사의 텐트폴 영화들이 부진한 성적을 내며 차례로 무너지고 있다.  


세 작품 모두 백억원을 훌쩍 넘기는 제작비를 쓴 대작으로 업계의 기대가 높은 작품들이었던 만큼 결과에서 오는 충격 또한 크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현상이 단지 12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1월 개봉한 <염력>부터 10월에 공개된 <창궐>까지 올해 선보인 ‘대작’들은 마치 도미노를 보는 것처럼 하나씩 쓰러졌다.


백수십 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자랑하는 영화들은 어쩌다 이렇게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또 왜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된 걸까?



대마불사 : 큰 영화가 승리해온 시장

최근 수년간 한국영화계에서는 특히 배급사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믿어왔다. 이들의 믿음을 어리석다 손가락질할 수 없는 이유는 이러한 신화를 관객과 함께 써왔기 때문이다.


2016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를 보면 1위를 차지한 <부산행>부터 10위를 차지한 <판도라>까지 흥행 TOP 10 작품들 가운데 8편이 총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소위 말하는 ‘대작’이다. <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대작 가운데 망작도 있었지만 여름 텐트폴 영화 4편(<부산행>, <덕혜용주>, <인천상륙작전>, <터널>)이 모조리 흥행에 성공하고, 연말 시장에 들어갔던 <마스터> 역시 최종 700만을 넘기는 등 믿고 밀어준 영화들이 그에 걸맞은 성적을 내며 밥값을 해줬다. 결과적으로 2016년도 총제작비 100억 이상 대작 11편의 평균 수익률은 무려 68.7%에 달했다. (출처 : 2016년도 영화진흥위원회 결산자료)  

 [2016년도 한국영화 연간 박스오피스]


2017년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총제작비가 100억원을 상회하는 작품 12편의 평균 수익률은 지난해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높은 32.4%를 기록했다. 하이 시즌인 설 연휴(<공조>, <더 킹>), 여름(<택시운전사>), 겨울(<강철비>, <신과 함께>, <1987)>)에는 사이즈 큰 영화들이 따박따박 홈런을 쳐주었고 천만 영화도 두 편이나 나왔다. 12편 가운데 BEP(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6편에 그쳤으나 <군함도>나 <남한산성>, <조작된 도시>처럼 BEP 달성에 실패한 대작들도 BEP에 근접한 성적을 거두어 투자자에게 큰 손해를 입히지 않았다. (출처 : 2017년도 영화진흥위원회 결산자료)

  [2017년도 한국영화 연간 박스오피스]

(※723만 동원한 <1987>을 비롯 12월 개봉작은 최종 스코어가 더 높음)



신화의 탄생

‘대마불사’의 신화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전국적으로 광랜이 보급되고, 빨라진 인터넷은 대용량 동영상파일의 공유, 다시 말해 영화 불법 다운로드를 용이하게 했다.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행위가 보편화되면서 ‘집에서 모니터로 봐도 무방한 영화’라는 하나의 기준이 생겨났다. 부가판권 시장이 완전히 몰락하고 극장이라는 단일 윈도우에 올인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화산업의 플레이어들은 자연스럽게 ‘극장에 가서 볼 만한 영화’, 그러니까 스케일이 크고 볼거리가 확실한 작품을 쫓기 시작했다.  

한국영화에서 시도한 적 없는 장르와 비주얼에 대한 창작자들의 도전정신과 영화시장이라는 파이 자체를 키우고자 하는 각 배급사의 니즈가 만나 <괴물(2006)>, <디워(2007)>,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해운대(2009)>, <국가대표(2009)> 같은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자, 이러한 경향은 가속화되고 결과적으로 영화산업의 규모, 즉 파이는 커지게 되었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올해 개봉한 ‘대작’들이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기준에서 지난 수년간 개봉했던 대작들에 크게 떨어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염력>의 경우 한국영화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초능력’이라는 소재를 끌어왔고, <인랑>은 스팀펑크 풍의 근미래를 스크린에 구현했다. <창궐>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좀비라는 소재를 풀어보려 했고, <PMC>는 마치 게임처럼 1인칭 시각(FPP)에서 벌어진 액션을 그려내고자 했다.


문제는 시나리오다. 투자자로부터 100억 이상의 제작비를 끌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제품 샘플이라도 있는 제조업도 아니고 완전히 허구의 것, 즉 ‘이야기’를 파는 분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대박을 낸 감독이거나 대박을 낸 제작자라면 상대적으로 쉽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 개봉한 ‘대작’ 영화들의 라인업을 보면 역시나 그렇다. <부산행>의 연상호 감독의 차기작, <공조>의 김성훈 감독의 차기작,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의 차기작, <광해>의 추창민 감독의 차기작, <밀정>의 김지운 감독의 차기작이 있었고, <해운대>, <히말라야>를 만들어온 JK필름에서 내놓은 영화(<협상>)과 <관상>으로 대박을 냈던 주피터필름 제작작품(<명당>)이 있었다

파이가 커지면서 플레이어들이 가세했고 결국 CJ, 쇼박스, 롯데, NEW 4대 배급사에 메가박스까지 더해 5개 배급사가 라인업 경쟁을 하는 와중에 대박 흥행을 만들어본 감독 혹은 제작자를 선점하려 하다 보니 시나리오에 대한 충분한 시간적 투자와 검증이 부실해지게 된 것이다.



관객은… 움직이는 거야!

2018년에는 총제작비 100억원 이상의 대작영화만 총 15편이 개봉했으나 이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작품은 전작의 흥행을 이어간 <신과 함께-인과 연>을 포함해 단 4편이다. 시리즈물인 <신과 함께>를 제외하면 흥행 대박을 거둔 작품은 그간의 흥행 부진에 절치부심한 이해영 감독이 <독전> 한 편 뿐이고, 나머지 두 작품, 여름 성수기 텐트폴 영화 <안시성>과 윤종빈 감독이 칸영화제까지 다녀온 <공작>은 손익분기점에 턱걸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대략적으로 올해 대작들의 수익률을 추산해보면 <염력>에서 <창궐>까지 약 -20%, 섣부르지만 12월 영화 3편을 포함하면 -30%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 2018/12/27 기준]

(※ 2017년 12월 개봉작인 <신과 함께-죄와 벌>, <1987>은 2017년작으로 간주)


올해 잘된 영화들은 감독의 네임밸류나 화려한 캐스팅에 기댄 작품들이 아니었다.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해 비주얼로 승부를 보려 한 영화들도 아니었다. 뜻밖의 저예산 공포영화 <곤지암>이 흥했고, 멜로는 안된다는 선입견을 깨고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너의 결혼식>이 선전했다. 소재적 재미를 탄탄한 이야기 구성으로 살려낸 <완벽한 타인>과 <암수살인>도 빼놓을 수 없다. 멀티 캐스팅이 아닌 여성 원탑영화인 <리틀 포레스트>, <마녀>, <도어락>, <미쓰백>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 하다.


지난 몇 년간 한국영화를 아끼는 이들은 한국영화에 ‘허리’가 사라졌다는 걱정을 해왔다. ‘허리’라 함은 순제작비 30억~80억 사이의 중간급 영화를 말한다. 2018년이 ‘위기’이자 ‘기회’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올해 흥한 ‘허리’ 영화들은 드라마나 K-POP에 비해 해외시장 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한국영화가 무작정 벌크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영화를 만들고 파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 자체라는 점을 깨우쳐주었다.


각 배급사마다 당장의 타격은 적지 않겠지만 감독의 네임 밸류나 화려한 캐스팅에 기댄 영화가 아니라 참신한 기획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중심이 된 영화의 주가가 올라간다는 점은 오히려 긍정적인 일이 아닐까? 이미 촬영을 마쳤거나 투자가 확정된 내년 라인업보다는 내후년 즉, 2020년 라인업에 있어 발전적인 변화가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2018.12.2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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