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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로보 Jan 25. 2019

나이차가 뭐길래? 한국대표 남배우들의 사례를 돌아보다.

(2018.12.25 작성)

최근 하정우 주연의 영화 <백두산>에 수지가 하정우의 아내 역할로 캐스팅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6살 차가 나는 두 배우가 부부 역을 연기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쏟아졌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 <마약왕> 또한 1967년생인 송강호의 아내 성숙경 역을 맡은 김소진과 내연 관계에 있는 로비스트 김정아 역을 맡은 배두나 두 배우 모두 1979년생으로 12살씩 차이가 난다.


한편 드라마의 경우, 현재 시청률 고공행진 중인 <남자친구>나 상반기 큰 화제를 모았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처럼 연상연하 커플을 컨셉으로 내세운 작품이 아니더라도 남자주인공을 맡은 배우보다 여자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나이가 많은 사례는 특별히 화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흔하다.

<황후의 품격>의 장나라 역시 상대역인 신성록, 최진혁 보다 나이가 많고, <뷰티 인사이드>에서 주인공들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서브커플 이다희, 안재현 역시 두 살 연상연하였으며, 그 외에도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신혜선과 양세종, 실제 커플로 발전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박민영과 박서준, <내 ID는 강남미인>의 임수향과 차은우 등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한국영화계는 정말로 남자주인공의 짝으로 나이 어린 여자배우를 낙점하는 경향이 있는 것일까? 일찍이 톰 크루즈,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등 할리우드의 탑 남자배우들의 필모그라피를 중심으로 상대역을 맡은 여자배우들의 나이를 분석한 기사가 게재된 바 있었다.

(Leading me age, but their love interests Don't-남자주인공은 나이를 먹지만 그들의 상대역은 그렇지 않다 https://slate.com/culture/2015/05/leading-men-age-but-their-love-interest-don-t.html)


위 기사에서 영감을 받아 송강호,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최민식, 이병헌 등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배우들의 필모그라피를 통해 알아보았다. 각 배우들의 필모그라피를 연대기순으로 정리하고 그 가운데 아내, 연인 혹은 로맨틱한 감정이 오가거나 성적인 관계를 맺은 상대방이 있는 작품에서 상대 여자배우의 나이를 확인하였다.

국민배우 송강호는 어떨까? 40대 초반, <밀양>을 찍을 때까지는 비교적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전미선이나 문소리, 전도연 등의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왔다. 그러던 중 <박쥐>와 <푸른소금>이 그래프를 드라마틱하게 흔들어놓았다. <박쥐>는 송강호가 체중을 10kg나 감량하며 노력한 덕인지 김옥빈의 성숙한 마스크 덕인지 기대 이상의 합을 보여주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푸른소금>의 경우, 무려 23살 연하의 신세경과의 멜로라는 무리수를 두고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최근 개봉한 <마약왕> 역시 상대역을 맡은 배두나, 김소진 배우가 모두 띠동갑 연하로, 연인 혹은 부부로서의 투샷이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부터 거칠지만 인간미 넘치는 역할까지 연기의 폭이 넓은 배우 김윤석은 어떨까? 14살 차이가 나는 박효주 배우와 두 작품을 함께 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동년배의 여자배우들과 손발을 맞춰 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견미리, 김희애, 김성령 등 연상의 상대역을 여러 번 만나온 점이 눈길을 끈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배우 설경구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래프 상에서 <싸움>과 <서부전선>이 유독 눈에 띈다. <서부전선>의 경우 아내 역을 맡은 이상희가 무려 16살이나 어렸고 <싸움>의 경우 전 부인 역의 김태희가 13살 연하였다. 위의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완만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역도산>이나 <해운대>, <소원> 같은 작품에서도 상대역을 맡은 여자배우들과 거의 열 살 가량 나이차가 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여담이지만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퀴어 케미를 선보였던 임시완은 21살 아래였다.  


황정민의 경우, 9살 연하의 임수정과 함께 한 <행복>, 11살 연하의 한혜진과 <남자가 사랑할 때> 등을 제외하면 비교적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드물게 제작되는 정통 멜로 장르였는데 흥행에도 실패했고 영화에 대한 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안정적인 우상향 그래프를 만들어낸 데는 <댄싱퀸>을 비롯해 무려 세 작품이나 같이 출연했던 1살 연상의 배우 엄정화의 기여도가 막대한 것으로 보인다.  


1956년생, 올해로 만 56세의 최민식은 놀라울 정도로 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린 여자배우들과 출연한 작품이 많다. 그 가운데는 부녀 관계 혹은 사제 관계라는 설정 때문에 상대역과 나이가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 같은 영화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영화들이 더 많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침묵>에서도 애인 유나 역을 맡은 이하늬와 무려 21살 차이가 났다. 아내와 사별하고 새로 만난 여자이고 이십대 딸과 서로 부딪히는 사이라는 설정이 있기는 하지만 두 배우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납득하기는 쉽지 않은 그림이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스무살 연하의 김태리와의 멜로 연기로 논란을 불러왔던 배우 이병헌은 어떨까? 20대 시절 연기했던 작품들은 전부 또래 배우와 출연했지만, 주연배우로서 입지가 탄탄해진 30대로 접어들면서 상대역의 나이가 대폭 어려졌다. 총 14개 영화 가운데 10살 이상 어린 여자배우와 손발을 맞춘 작품이 7편이나 될 정도다. 나이차가 가장 많이 났던 사례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인데, 중전 역을 맡았던 한효주가 성숙하고 차분한 연기를 보여주어 영화 상에선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실제로는 17살이나 연하였다.  



남자배우들 각자의 필모그라피를 중심으로 분석했지만 캐스팅의 주체는 당연하게도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현상이 문제적이라도 배우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남자배우에 비해 상대역인 여자배우의 나이가 도드라지게 어린 작품들이 가진 경향성이란 것이 있을까?


<파이란>, <남자가 사랑할 때>, <침묵>, <행복>, <푸른소금>, <달콤한 인생> 등 남자주인공 중심의 멜로라인이 강한 드라마들이 유독 많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다. 관객들은 특히 티켓파워를 쥐고 있는 여성 관객들은 반기지 않는 이러한 작품들을 영화산업의 헤게모니를 쥔 '남성' 제작자와 '남성' 감독들이 과하게 이입하거나 도취되어 불필요하게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창작의 영역에 더 많은 여성들이 진입한다면 위와 같은 현상은 달라질 지도 모른다.

 


(2018.12.25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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