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 말을 건다.
처음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대학생일 때였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에게 들었던 수강신청 꿀팁은 절대 1교시를 택하지 말라는 거였다. 하지만 1교시를 피한다고 피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항상 전공수업은 1교시에 배치가 되는 걸까. 더욱더 최악의 문제는 아침 9시에 1교시 교양수업을 듣고 그 후로 전공 강의시간까지 공강시간이 길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나의 1학년 시간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심지어 강의 듣는 건물 사이의 거리도 멀어서 10분으로는 절대 도착할 수 없는 거리를 10분 내로 오갔어야 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이렇게 풀강의가 아닌 날에는 똑같이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 1시간 수업을 듣고 그 후로 쭉 공강이다가 4시에 전공수업 3시간짜리를 듣고 끝나는 시간표를 가졌었다. 하나는 필수교양이요 하나는 필수전공이라 강의를 버리지도 못했다. 풀강의냐 우주공강이냐.
이런 극단적인 시간표를 가지고 1학기를 보내고 다음 학기에는 점심시간도 보유하고 우주공강도 없는 시간표를 짜겠다 다짐했지만 어째서인지 전공과 필수교양이 또 1교시를 비롯한 우주공강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입학부터 졸업 때까지 주에 두 번은 1교시가 있는 시간표를 안고 살았다. 심지어 막학기, 4학년 때는 미룬 전공수업을 듣느라 6 전공을 소화했다. 남들은 전공을 앞학년에 듣고 막학기에는 교양으로 채워서 학교 나가는 비중을 줄인다는데 나는 정반대의 대학생활을 보냈다.
사실 시간표만 이러면 다행이었다. 나는 통학생으로 통학시간에만 편도로 2시간 넘게 썼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테지만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 출근길 대중교통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지옥도 이런 생지옥이 없다. 그러니깐 다들 지옥철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거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 틈에 끼어서 탑승하면 다행이었다. 만약 지하철이 김밥이었다면 진작에 옆구리가 터졌을 것이다.
지옥철인 출근길 지하철은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지고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불쾌하고 겨울에는 겨울대로 불쾌하다.
게다가 서울대입구역이 서울대입구가 아니듯, 내가 다니던 학교도 역에서 내려서 또 한참을 가야 학교가 보였다. 심지어 오르막길이 가팔라서 매일같이 등산을 하는 기분으로 학교를 다녔다. 2시간을 달려서 도착했더니 교문까지 등산을 하고, 또 학과까지 한참을 등산을 하고... 매일 다녔지만 매일 다니고 싶지 않았다.
이미 대중교통만으로도 체력이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 그 앞에 있는 게 등산이라니, 두 발이 아니라 네 발로 기어서 등교를 하게 만든다.
4년이면 그래도 익숙해질 법도 한데 실상은 햇수가 지날수록 점점 체력이 바닥이 나는 게 실시간으로 잘 느껴질 뿐이다. 익숙해지지가 않은데 앞으로 평생을 출퇴근이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면 아찔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인생은 늘 그렇듯 아무런 생각도 안 하고 있을 때 문득 말을 건다.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을 한 건 3학년 1학기, 교양수업을 듣고 있었을 때였다. 가끔 강의를 진행하다가 딴 길로 새는 교수님이 있지 않은가? 3학년 때 들은 교양수업이 그러했다. 강의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강의가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오후 2시 수업이어서 점심을 먹고 강의를 들으면 항상 졸음이 쏟아졌던 시간대의 강의였다. 그날도 잠깐 멍을 때리다가 정신을 차렸는데 교수님께서 휴직을 하고 시골로 내려갔던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건강 때문에 내려간 시골이었는데 거기서 지내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다시 복직을 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시골로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정년퇴직하면 다시 시골로 갈 거다. 너네는 시골이 재미없고 할 일 없는 곳으로 느껴지지? 거기가 제일 바빠. 해가 떠 있으면 더워서 뭘 못 해,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마당에 자란 잡초도 제거하고, 텃밭도 관리해야 한다. 이걸 언제까지 다 해야 할까? 점심 먹기 전? 아니지 그때가 되면 이미 더울 데로 더워서 쓰러져. 적어도 10시 이전에 다 끝내야 해. 너네 지금 수업시간 졸리지? 시골은 이때 더워서 아무것도 못해서 집에서 노는 시간이야. 책을 보던 잠을 자던 하는 거지. 그러니깐 시골의 시간으로 보면 너네는 지금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란 말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는 시골이 아니니깐 수업을 해야겠지? "
벌레를 무서워하는 내가 시골로 가서 산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지만 당시에는 벌레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막연히 '이거다. 남들 일 할 때 잘 수 있는 시간, 시골로 가야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앞으로 다가오는 취준의 부담감, 중간 기말고사와 리포트 과제와 조별과제, 왕복 4시간 이상의 통학거리 등 대학시절에만 받을 수 있는 부담감과 압박감에 나도 모르게 지쳤던 건지, 과제를 하느라 잠을 못 자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지 아무튼 이렇게 지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시골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원래 계기는 항상 터무니없는 일 아니던가. 물론 그 뒤의 일도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모든 시작이 중요한 거니깐 이 목표 하나만으로도 조금은 앞날이 밝아지는 기분이었다.
취업준비 하기 싫다. 하지만 시골에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돈이 있으려면 취직을 해야겠지. 취직을 하려면 취업준비를 해야겠..네...로 이어진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취업준비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졸업 직전까지 가서는 그냥 돈만 벌면 다 취업한 거 아니냐, 경력 있는 신입이 어딨냐, 신입 뽑는데 경력을 왜 물어보냐 등 압박감을 많이 받아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하고 있던 주말알바 사장님한테 진심이 조금 섞인 농담을 했었다.
"사장님, 저 더 이상 시험이랑 면접 보면 토할 것 같은데 그냥 정규직 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그래도 원하는 직업이나 회사가 있을 거 아니야?"
"전 그런 거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리고 돈 벌면 다 직장인이고 사회인이고 그런 거지, 꼭 회사 들어가야 하나요..."
"꼭 취준 할 때 애들이 맛이 가더라, 그래 일단 여기서 돈 벌고 아직 어리니깐 하고 싶은 일을 잘 생각해서 준비해 봐. 후회는 없어야지."
그 후로 바로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다. 이래서 사람은 되든 안되든 말이라도 꺼내봐야 하는 것 같다. 얼렁뚱땅 취업아닌 취업을 하고 몇 년 뒤에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을 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됐었다. 분야가 문제가 아니라 회사를 선택하는 것에 있어서 그 회사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사회초년생의 눈이 문제였다. 이 눈은 나를 고통 속으로 내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