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친구 중에 물리학 전공자가 한 명 있다. 이 친구가 3학년 때 전공 수업인 양자역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기말고사를 봤을 때의 경험을 나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문제지를 받은 후 첫 페이지를 읽어보고는 풀 수 있는 문제를 전혀 찾지 못해 시험지를 다음 장으로 넘기던 순간, 교실 전체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고 한다. 양자역학이 난해한 학문이라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 당시 물리학 전공자들에게도 양자역학은 제대로 매운맛을 선사하는 과목이었던 것이다.
작년에 그렉 이건이 쓴 『쿼런틴』이라는 과학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추리소설적 요소가 많은 초반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후반부에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양자역학과 형이상학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글자는 읽어 내려가지만 내용은 거의 이해되지 않는 경험을 했다. 물리학자 김상욱과 북튜버 김겨울의 추천사를 보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돌이켜 보면 김상욱은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사람이고 김겨울은 과학소설과 철학 애호가이기 때문에 추천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았어야 했다. 거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겨우 끝까지 읽고 나니 허무맹랑한 히어로물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 글에서 소개할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다르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이 책의 작가인 앤디 위어가 쓴 과학소설은 다르다. 앤디 위어는 『마션』, 『아르테미스』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과학소설을 꾸준히 써 왔다. 『마션』은 방대한 과학 지식과 수학적 계산이 소설 중간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긴박감 넘치게 진행되고 주인공도 매력적이어서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도 봤는데 과학 지식의 부족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잘 상상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 훌륭하게 구현된 덕분에 인상 깊게 봤다. 『아르테미스』는 달에 건설된 기지를 배경으로 했는데 역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앤디 위어의 세 번째 책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제목에 사용된 Hail Mary를 네이버 오픈사전에 검색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이 표현은 미식축구에서 나온 것이다. Hail Mary pass는 미식축구에서 경기가 다 끝나가는 시점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성공 가능성이 낮은 긴 패스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계획이나 시도"등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본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도 잃어버린 채 우주선 속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서서히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는 자신이 지구를 구하기 위한 자살 임무에 파견된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스트로파지라는 미지의 외계 생명체가 태양열을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를 낮추면서 생명체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지구에서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찾기 위하여 자원을 총동원하여 태양계 밖의 행성계로 우주선을 발사하였는데 거기에 주인공이 타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이 행성계에서 아스트로파지가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알아낸 다음에 그 정보만 지구로 돌려보내고 우주 속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
소설은 주인공인 라일랜드 그레이스 박사가 우주선을 타고 타우세티 행성계에 도착했을 때 벌어지는 일들과 과거에 우주선 발사를 준비하던 시절에 있었던 사건들이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역시 온갖 분야의 과학지식이 난무하기 때문에, 지식이 풍부할수록 더 많은 내용을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과학지식을 잘 몰라도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사실 에너지 저장 효율이 엄청나게 뛰어난 아스트로파지라는 생명체의 존재나 소설 중반부 정도부터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는 전적으로 상상력의 산물일 텐데, 이들에 대한 묘사는 상당 부분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작가가 치밀한 자료 조사를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학소설도 본질적으로는 '소설'이기 때문에 아무리 배경이 특수하다고 하더라도 결국 등장인물(또는 사물)의 행동과 생각을 둘러싼 이야기가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이 소설은 흥미롭다고 생각하는데 인류의 마지막 보루인 자살 임무에 파견된 과학자가 영화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영웅이 아닌 겁 많은 평범한 사람에 더욱 가깝고 미지의 외계 존재와 교류를 하는 모습 등이 사람들이 재미를 느끼는 전형적인 이야깃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에서야 읽었지만 이 책은 2021년에 출판되었고 이미 라이언 고슬링을 주연으로 한 영화 촬영이 확정되었다고 한다. 언제 영화가 개봉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션』을 읽고 영화로 보았을 때도 또 다른 재미가 있었듯이 원작에서 느낀 감동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훌륭하게 재해석하는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