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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Oct 16. 2024

서점에 갔다가 문득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가족들 중 아내는 쇼핑을 좋아하고 아들은 쇼핑을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주말마다 나들이 장소를 두고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한 편이다. 사실 나도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집에 있기보다는 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확히 중립의 위치에 있다. 다행히도 아이가 서점은 좋아하기 때문에 보통은 서점이 있는 쇼핑몰에 가는 것으로 타협을 하게 된다.


이 서점에는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아이가 아이들을 위한 책이 놓여 있는 매대에 관심을 가져서 그 책들을 훑어보았다. 자연스럽게 다음 매대로 함께 이동했는데 인문, 과학 서적이 놓여 있었다. 큰 수에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남자아이답게 매대에서 벽돌책을 몇 권 넘겨보더니 책의 내용이 아닌 두께에 감탄했다. 그러다가 심심했는지 아빠는 이 책 읽었냐면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대답을 하면서 놀랐던 점은, 그 매대에 있던 책 중 내가 읽은 책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어렸을 때 읽은 책도 있고 최근에 읽은 책도 있었는데 못해도 열 권 정도는 내가 읽었다는 사실이 기억나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는 책은 거의 없었다. 그 책에 대해 '재미있게 읽었다' 이외의 느낌을 한 마디라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책이 반이나 될까 싶었다.


시험의 왕국인 대한민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다 보니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과연 책을 읽는 행위의 효용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미리 정해 둔 나만의 대답(또는 변명)으로 급하게 상황 진압을 시도하곤 한다. 그 대답은 바로 '독서는 그나마 시간을 덜 해로운 방식으로 보낼 수 있는 취미 중 하나다. 혹시 읽었던 내용이 조금이라도 기억이 나서 나중에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고.'이다.


이 대답이 너무 냉소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화를 할 때 슬슬 고유명사가 잘 생각이 안 나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의 나에게는 지극히도 현실적인 대답이다. 어디선가 콩나물에 물을 주다 보면 물이 그대로 아래로 통과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콩나물이 도대체 자랄 수는 있는 건지 의문을 품기 마련인데, 그래도 결국 콩나물은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 내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진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일텐데, 내가 생각하는 책 읽기의 효용에서 희망적인 면만을 뽑아냈을 때 일맥상통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이 기억에서 지워진 것 같아도 장기적으로는 한 구절이라도 기억하거나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성장도 무조건 주어진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물만 준다고 해서 콩나물이 항상 잘 자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햇빛, 물을 주는 방식 등 제반 여건이 갖춰져 있어야 충분히 긴 시간을 버텨서 성장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콩나물이 성장하는 것처럼 모든 독서에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는 그냥 책을 읽는 경험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독서의 효용일지도 모르겠다.


* 제목사진 출처: https://www.yes24.com/Mall/UsedStore/Detail/Gangseo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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