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리 아이가 산타클로스에게 받은 성탄절 선물은 부루마불 게임이었다. 다른 집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도 비밀리에 설치되어 있는 성탄절 선물 선정 위원회는 최근 아이의 선호와 행동을 볼 때 부루마불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부루마불을 선물로 선정하게 된 계기가 된 보드게임이 바로 '부자만들기'였다. 내 아들은 이 게임을 작년 9월에 대형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자신의 생일선물로 선택하였다. 처음에 사줄 때는 4천 원도 되지 않는 저렴한 가격에 놀람과 동시에 '뭐 이런 조악한 걸 골라왔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이가 워낙 이 게임에 푹 빠진 터라 나도 덩달아 거의 고인 물이 되어 공략집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게임을 해보니, 첫인상과는 달리 잘 만들어졌고 현실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아이들 교육에도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보드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임 참가자는 7천만 원씩의 돈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며 10억 원을 먼저 모으면 승리하게 된다. 매 차례에 주사위 두 개를 던져 이동을 하고 한 바퀴를 돌면 월급 2백만 원을 받는다. 각 칸에서는 지시에 따라 은행 또는 다른 참가자와 돈을 주고받거나 카드를 뽑을 수 있다.
카드는 크게 세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 재테크 카드를 뽑으면 가진 돈을 이용하여 해당 카드를 소유할 수 있다. 재테크를 하면 월 수입이 적게는 250만 원(부동산 중 대지)에서 많게는 7천만 원(일부 투자 자산)까지 늘어나게 된다. 둘째, 뉴스 카드를 뽑으면 각종 경제 뉴스에 따라 참가자들의 부동산, 창업, 투자 자산이 영향을 받게 되면서 돈거래가 일어난다. 셋째, 우편함 카드는 자녀 대학 진학, 부모님 효도여행 등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돈거래를 발생시키는 카드다.
결국 이 게임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은 성공적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이다. 그만큼 게임의 재미를 위해서는 다양한 재테크 자산의 균형이 중요하다. 당장 부루마불만 보더라도 서울만 가지고 있으면 승리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에 훌륭한 보드게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반면 부자만들기는 부동산, 창업, 투자 자산의 수익과 위험성 사이에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는 편이다. 부동산은 구입 당시의 금액이 그대로 가치로 인정되지만 그만큼 수익이 상대적으로 낮다. 창업의 경우 월 수입이 부동산보다 높지만 나중에 팔거나 가치를 평가할 때 구입금액에서 인테리어 비용을 뺀 만큼만 인정된다. 투자자산은 가장 수익이 높지만 대신 구입하는 순간 구입금액의 절반으로 가치가 줄어든다.
이 게임은 현실 경제를 꽤 잘 반영하고 있다. 재테크 없이 순수하게 월급 2백만 원씩만 받으면 지출이 하나도 없더라도 승리 목표인 10억에 도달하기까지 무려 465바퀴를 돌아야 되는데 여기에는 월급만 모아서는 부자가 되기 힘든 처절한 현실이 잘 녹아 있다. 또한 창업을 하면 즉시 인테리어 비용을 손해 보는 점, 은행 대출에 한도(3억)가 있는 점, 주사위를 던질 때와 각종 카드를 뽑을 때는 운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점 등도 게임의 현실성을 높이는 요소들이다. 다만 게임이 처음 나온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1억 6천만 원~2억 5천만 원 정도) 점은 옥에 티로 볼 수 있겠다.
내 아들은 이 게임을 하면서부터 돈 계산을 하는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내야 할 돈과 받을 돈을 종합하여 정산을 해야 하는데 연습 삼아 몇 번 시켰더니 이제는 내가 하는 것보다 더 빨리 계산을 마치기도 한다. 역시 놀면서 자연스럽게 뭔가를 배우는 게 가장 효과적인 교육방식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7천만 원에서 시작해서 10억을 모아야 하니 게임이 끝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리는 편이다. 순수하게 창업, 투자만으로 10억에 도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리지만 뉴스카드를 잘 뽑아서 수익을 뻥튀기할 기회(예를 들어 창업 매출의 세 배나 대지 구입가격의 두 배를 은행에서 받는 경우)가 주어지면 의외로 금방 10억을 벌 수도 있다. 이렇게 운이 받쳐준다면 2~3명이 게임을 했을 때 끝나기까지 보통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이러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내 아내가 이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바로 게임에서 10억을 벌어서 승리하더라도 현실의 나에게는 10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현타가 몰려온다는 점이다. 이로부터 굳이 어른들을 위한 교훈을 뽑아내자면 '이 게임을 통해 재테크의 중요성을 배워서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자.' 정도가 아닐까 싶다.
* 제목 배경사진 출처: https://www.coupang.com/vp/products/2242378?itemId=23283400449&vendorItemId=90315680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