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플레이스」를 보고
'환영합니다!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Welcome! Everything is fine.) 첫 장면에서 주인공 엘리너는 눈을 뜨자마자 하얀 벽에 초록색 글씨로 쓰여 있는 이 문장을 마주한다. 곧이어 백발의 남자가 자신을 마이클이라고 소개하며 엘리너에게 '당신은 죽었고 지금은 굿 플레이스에 있다'라고 알려준다. '좋은 곳'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굿 플레이스(good place)는 일종의 천국인데 아마 특정 종교색을 피하기 위하여 선택한 명칭으로 생각된다. 실제 엘리너는 마이클에게 '어느 종교가 가장 사후세계를 잘 맞추었냐?'라고 물었는데, 마이클은 모든 종교가 대부분 틀렸고 가장 정확하게 사후세계를 예측한 사람은 마약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았던 한 청년(더그 포셋)이라면서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그의 사진을 가리키기도 했다.
사실 엘리너는 굿 플레이스에 어울리는 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생전 모습은 오히려 양아치에 가까웠다.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배드 플레이스(bad place, 지옥)로 쫓겨나지 않고 이곳에 남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사람의 행동은 심지어 사후세계에 와서까지도 그렇게 쉽게 변할 리 없었고, 엘리너가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굿 플레이스가 이상하게 변하면서 엘리너의 죄책감은 더해만 간다. 그러던 중 제이슨이라는 주민도 실수로 굿 플레이스에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엘리너는 제이슨과 함께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솔메이트이자 윤리학자인 치디로부터 윤리학 수업을 듣기로 한다. 여기까지가 시즌 1 초반의 대략적인 설정인데 이후 드라마는 사후세계와 현생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 드라마는 시트콤이라서 몇몇 에피소드를 제외하고는 길이가 20분을 살짝 넘기 때문에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시즌에 12~13편의 에피소드가 있고 4 시즌까지만 있으므로 정주행을 하더라도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내용은 아주 알차게 들어가 있다. 특히 사후세계와 현생에 대한 세계관이 아주 인상적이다. 사람들이 죽은 후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로 분류되는 시스템이나 굿 플레이스에서는 욕을 말해도 그 욕이 순화되어 나오는 현상(예를 들어 'What the fork'),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에서 일하는 행정 직원들의 직장(?) 생활 등 깨알 같은 세부사항들 덕분에 드라마의 세계관이 탄탄하게 완성되는 동시에 시트콤으로서의 본연의 재미도 더해진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죽음'과 '윤리'라는, 한없이 엄숙하게만 느껴질 수도 있는 주제를 무려 시트콤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주인공 중 한 명인 치디가 생전에 윤리학 교수였고 다른 주인공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치디의 수업을 듣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키에르케고르 등 철학자들의 이름이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한다. 한 에피소드에서는 본격적으로 트롤리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철학, 윤리학과 관련된 내용은 무겁지 않게 살짝만 묻어있고, 이 내용을 몰라도 시트콤을 즐기는 데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 덕분에 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의 본성이나 죽음의 본질에 대해 가볍게라도 생각해 볼 기회가 많았다. 미국 지상파 방송국인 NBC에서도 방영된 시트콤답게 이 드라마는 본성과 관계없이 인간은 교육, 수련 등을 통해 선해질 수 있는 존재라는 낙관적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똑같은 관점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면 악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로 바뀔 수도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긍정적인 면에 더 주목하였다. 내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드라마에 몰입해서 봤다.
또한 드라마가 사후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생각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는 굿 플레이스와 배드 플레이스가 수시로 등장하는데, 과연 이곳들이 이름 그대로 좋은 곳과 나쁜 곳인지 의문이 드는 경우도 많다. 인생은 예측불가능하고 유한하기 때문에 살아볼 만하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류의 말이 후반부에 등장하는데,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기 합리화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서서히 그런 관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보니 내가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진화시켰을 정도로 상당히 영향을 미친 드라마였던 것 같다.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제작진이 등장인물들의 다양성(diversity)을 신경 썼다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 있다. 주인공들만 살펴보아도 엘리너는 백인 여성, 치디는 흑인 남성, 제이슨은 필리핀계 남성, 타하니는 파키스탄계 영국인 여성, 마이클은 백인 남성이다. 시즌 2 이후에 등장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판사는 히스패닉계 여성(으로 보였지만 정작 배우는 동유럽계라고 한다.)이었다. 당연히도 사후세계는 모든 인종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다양성을 고려한 점은 사려 깊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 드라마를 볼 때 항상 아쉬운 부분이지만 내가 미국 대중문화에 익숙했다면 좀 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다. 부잣집 딸로 태어나 평생을 자선사업가로 산 타하니는 말끝마다 유명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데, 그 유명인사 중에는 나는 못 들어본 사람도 꽤 많았다. 또한 마이클이나 판사가 가끔씩 다른 미국 드라마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그 내용을 잘 모르니 대사를 들어도 웃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재미있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시트콤이었으며, 이에 더해 죽음과 윤리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의미 있는 드라마였음에는 틀림없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netflix.com/kr/title/80113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