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식독서

진화는 발전과는 다르다.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를 읽고

by Muswell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는 유튜브 채널 ‘과학드림’의 추천(광고) 영상(링크)을 보고 알게 된 책이다. 원제는 ‘자연의 결점들(Flaws of nature)’이라는 평범하고 밋밋한 제목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최소한 흥미 유발 차원에서는 번역본의 제목이 기가 막히게 뽑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물에서 숨을 쉴 수 없는 고래는 진화의 불완전성을 나타내는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다른 사례들까지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제목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서는 일관되게 자연에서의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다는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생물의 번식 과정에서 자기 복제가 불완전하게 일어나면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데, 그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은 생물의 생존율이 높아지면 이전 세대와는 다른 특성을 갖게 되고 이 경우 자연선택에 의해 생물 종이 진화한다고 표현한다. 문제는 진화가 각 개체 단위에서의 의지가 작용하여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며, 설사 목적이 있더라도 그 목적의 주체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하였다고는 하는데 진화한 형태라기에는 뭔가 이상하고 나사가 빠진 것 같기도 한 동식물의 사례가 수없이 등장한다. 자기 새끼들보다 월등히 큰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뻐꾸기 새끼를 키워주는 여러 새들, 적의 눈에 쉽게 띌 수 있어 위험하지만 굳이 화려한 꼬리를 달고 살아가는 수컷 소드테일, 여섯 번째 이빨이 다 닳으면 일곱 번째 이빨이 나지 않아 굶어 죽는 늙은 코끼리, 집단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꿀벌과 개미, 바다로 들어간 지 오래되었지만 물속에서는 숨을 쉬지 못하는 고래 등이 바로 그런 사례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 진화가 반드시 최적 상태나 도덕적으로 옳은 상태로의 변화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진화를 ‘발전’과 헷갈리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과학드림의 동영상은 꽤 재미있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술술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내용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학술적인 엄밀성이 더해지면서 서술이 복잡하게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미 생물학계의 고전이 되어 버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잘 모른다면 어리둥절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아울러 진화를 분석하는 데 필요한 수학적 모델링이 간단한 형태이긴 하지만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도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소이다. 역시 광고는 함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 자체는 진화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어렵더라도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5Cx51H8k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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