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식독서

'곰탕'이라는 제목의 공상과학소설

『곰탕』을 읽고

by Muswell

2063년 부산. 곰탕을 파는 식당에서 주방보조원으로 일하던 이우환은 갑작스러운 시간 여행 제안을 받는다. 지금은 노인이 된 식당 사장이 젊었을 때 먹었던 곰탕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사장 대신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곰탕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오고 재료도 가져온다면 따로 식당을 차려주겠다는 조건이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여행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고아로 자라 가족이 없는 우환에게 제안이 온 것이다. 고민 끝에 우환은 2019년으로 가는 배에 탑승한다.


소설 『곰탕』의 초반부 이야기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있다지만 한없이 한국적인 소재인 곰탕과 공상과학소설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설정인 시간여행의 조합은 정말 기발하다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소설가 장강명의 추천사에서도 이러한 설정이 가져다주는 충격이 잘 드러난다.

'곰탕 맛의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게 말이 되냐'라는 생각으로 처음 몇 장을 읽었다. 그리고 딱 한 번 쉬고 끝까지 다 읽었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신박한 초반 설정 말고 내세울 게 없는 소설은 결코 아니다. 상상의 산물이라 내가 맛볼 일은 없겠지만 2063년식 곰탕에 대한 묘사는 왜 식당 사장이 과거의 곰탕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충분히 끔찍하다. 또한 여러 번 쓰나미가 발생하는 바람에 부유층은 고지대에 살고, 빈곤층은 저지대에 거주하면서 먹고살기 위해 위험한 시간여행까지도 감수하는 2063년 부산의 디스토피아적 실상, 이러한 시간여행자들이 2019년을 살아가는 방식, 2019년에 벌어진 초현실적인 범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설득력 있는 세계관이 구현되어 있다. 그 와중에 곰탕집을 배경으로 우환이 지금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느끼는 장면들도 가끔 등장하여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서사에 쉼표를 제공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안 사실인데 작가인 김영탁은 '헬로우 고스트' 등의 영화를 연출한 감독 출신이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를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고 관심이 생겨 결말을 찾아봤다가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을 정도로 반전이 어마어마한 영화였다. 이 소설도 그 영화만큼이나 반전이 만만치 않은데 역시 이야기꾼은 장르를 딱히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곰탕을 좋아하셨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한두 달만에 집필한 소설이라고 한다. 책에서는 곰탕을 만드는 방식이 유달리 자세히 묘사되는데 결국 긴 시간 동안 중불로 끓이면서 반복해서 이물질을 계속 걷어내는 정성이 핵심이다. 곰탕은 초반부에서는 시간여행과 결합되면서 뜬금없는 소재처럼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정성 들여 만들고 따뜻하게 내놓는 음식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그리움과 사랑을 나타내는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 그런 면에서 제목의 의미가 첫인상에 비해 아주 깊게 느껴졌다.


밀리의 서재에 소개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에서야 읽었지만, 이 소설은 2018년에 카카오에서 연재되었고 당시 50만 명이 넘는 독자를 끌어모았다. 워낙 흡인력이 강하여 나도 처음 읽기 시작한 지 3일 만에 다 읽었다. 초반 설정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8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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