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을 읽고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소설가 성해나가 쓴 『혼모노』라는 책의 띠지에 인쇄되어 있는 배우 겸 출판사 대표 박정민의 추천사라고 한다. 아직 그 책을 보지는 못했는데 책도 재미있는 데다 유명인이 쓴 추천사가 워낙 강력한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들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직업을 하나도 아닌 두 개씩이나 가진 사람은 책 추천사도 예사롭지 않다. 한편으로는 감히 배우들의 직장 중 하나인 넷플릭스와 책을 비교하는 패기를 보니 그는 자신을 배우보다는 출판사 대표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넷플릭스에서 시리즈물을 아예 안 보는 건 아니지만, 요즘 나도 넷플릭스보다는 소설 쪽에 더 끌리고 있다. 그 이유는 슬프게도 체력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는 아무리 짧아도 6편 이상이라 결말이 궁금해 몰아보기를 하다 보면 체력 소모가 극심해서 다음 날을 생각하지 않고 달렸던 전날의 나를 탓하게 된다. 반면 소설은 영상에 비해 중간에 중단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또한 여러 권으로 된 소설이 아니라면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드라마 한 시즌을 보는 것보다 짧은 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길이의 영상물보다 더 많고 세세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장점이 있다.
『탄금』은 공교롭게도 유튜브에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홍보영상을 우연히 접하는 바람에 그 존재를 알게 된 소설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11부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길다고 생각해서 드라마 시청은 깔끔히 포기하는 대신 원작 소설을 읽기로 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조선시대 거상인 민상단의 외동아들 홍랑이 어린 나이에 실종된다. 씨받이의 딸인 재이는 이복동생인 홍랑과 우애가 깊었는데 실종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별채에 감금당하여 지낸다. 10년 후 추노꾼이 홍랑을 찾아 데려왔는데, 실제 홍랑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을 그가 알고 있었는데도 재이는 여전히 그를 사기꾼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홍랑을 동생으로 인정하게 되지만 왠지 모를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이와 함께 홍랑의 정체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 서사가 예상을 뛰어넘어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설정이 아주 신선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소설 초반의 세계관을 받아들이고 나니 결말이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책 뒷부분 절반 정도를 하룻밤만에 모두 읽느라 새벽에야 잠들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자기 직전에는 웬만하면 소설을 읽지 않는데, 그만큼 중간에 끊기가 어려운 소설이었다.
'탄금'은 죽을 때까지 금을 삼켜야만 하는 옛 중국의 형벌이라고 한다. 참으로 비싸면서도 잔인한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재이와 홍랑뿐만 아니라, 실종된 홍랑을 대신하여 민상단에 양자로 들어왔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재이에 대한 연모의 감정마저 실현하지 못할 위기에 놓인 무진, 홍랑의 어머니인 민 씨 부인 등도 모두 살아있는 것 자체가 탄금에 가까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 결말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실제 탄금보다 더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정도로 잔인한 짓을 저지른 등장인물들도 있다. 소설 제목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는 점에서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드라마 대신 책으로 읽을 때 장점이 하나 더 있다면 바로 최근에 읽었던 어느 책 보다 문체가 고풍스럽고 우아하다는 점이다. 소설의 배경인 조선시대에나 썼을 법한 고어(古語)가 많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어 안경을 '애체'라는 단어로 부르는 식이다. 그렇지만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소설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었다. 결말 부분까지 다 읽고 나면 예술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데, 이러한 아름다운 문체 속에 추악한 민낯이 드러나는 대반전이 숨어있다는 점에서 소설의 문체도 결말의 충격을 강화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 같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손에 땀을 쥐며 읽을 수 있었던 재미있는 소설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를 제치고 선택할 만한 자격이 충분한 소설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