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듣는 게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만
요즘 내 삶의 화두 중 하나는 '취미 찾기'다. 아이가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직은 취미를 즐길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이렇다 할 큰 취미도 없이 인생을 재미있게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새로운 취미를 개발하거나 지금까지 내가 특별히 취미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행위를 재발견해서 본격적으로 취미로 키워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아마 작년부터 다시 돈을 벌기 시작하니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나 보다.
딱히 취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2019년에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폰을 산 이후 새로운 루틴이 되어 버린 행동은 바로 아이폰에 깔려 있는 기본 앱을 통해 팟캐스트를 듣게 된 것이다. 여러 장르에 걸쳐 나름대로 다양한 팟캐스트를 들었고 지금도 세 개를 구독하고 있으니 들어봤던 팟캐스트를 주제별로 간단한 소개글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 글에서는 내 팟캐스트 역사의 시작이었고 가장 많은 종류의 팟캐스트를 들어 본 독서 분야에 대해 감상 글을 써보고자 한다.
사실 나는 스마트폰을 다른 사람들보다 꽤 늦게 쓰기 시작했다. 2012년 말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알아보다가 팟빵 앱을 통해 처음으로 듣기 시작했던 것이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이었다. 당시 지방에서 근무하던 중이어서 주말에는 주변 산에 등산을 많이 갔는데 올라가는 길에서는 힘들어서 들을 정신이 없었지만 주로 내려오는 길에 이 팟캐스트를 들었다. 소설가 김영하가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책의 일부분을 낭독해 주는 형식이었는데 산에서 조용히 듣기에 좋은 팟캐스트였다.
그 후 두 개의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팟캐스트라는 것을 완전히 잊고 살다가 2019년에 아이폰을 구입하면서 기본 앱으로 팟캐스트 앱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주변에서 접하는 글이 모조리 영어다 보니 유학 나오기 전에는 잘 읽지도 않던 한글 책에 대한 갈증이 폭발하면서 전자책 구독도 하고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도 드나들곤 했었다. 그때 요조라는, 이름만 들어봤던 가수가 책을 주제로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듣게 되었다.
그 팟캐스트가 바로 '책, 이게 뭐라고'였다. 2019년에도 이미 시작한 지 약 3년 정도 흘러 에피소드가 100회 가까이 쌓여 있어서 정주행 할 엄두까지는 차마 내지 못하고 (사실 첫 회부터 듣기 시작한 한두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팟캐스트를 정주행 해 본 경험은 아직까지 없다.) 에피소드 목록을 보고서 읽었던 책이거나 관심 있는 책을 소개하는 경우에만 골라 들었다. 남자 진행자도 이미 한 번 바뀌어서 소설가 장강명이 요조와 같이 진행하고 있었다.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청각에만 의존하다 보니 진행자들의 목소리와 발음이 좋아야 인기가 많은데 독서 팟캐스트는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요조의 목소리는 항상 차분하면서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장강명과의 톰과 제리식 궁합도 잘 맞았다. 특이하게도 방송 대본은 두 진행자가 매주 소개할 책을 직접 읽고 팟캐스트 PD, 작가와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이용하여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책 소개와 진행자들의 감상, 작가와의 대화가 알차게 이루어졌으며 빵빵 터지는 재미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잔잔한 재미를 놓치지는 않았다. 보통 한 책을 주제로 1주일에 두 개의 에피소드가 올라왔는데 특이하게 두 번째 에피소드 초반에는 요조가 소개하는 책과 관련 있어 보이는 시를 한 편씩 낭독해주는 시간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처음 듣기 시작한 이후로는 빠짐없이 챙겨 들었고 정이 가장 많이 갔던 팟캐스트였다.
책 소개 외에도 1주일에 한 번씩 '요글명글'이라는 10분 내외의 짧은 클립도 올라왔다. 진행자인 요조와 장강명이 교대로 자신들이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의 전부 또는 일부분을 낭독해주는 형식이었다. 이 코너에서 요조는 주로 신문, 잡지 등의 칼럼을 낭독했고 장강명은 최근 읽고 있는 책의 일부분을 읽어주었다. 보통 독서 팟캐스트는 책 소개 및 작가와의 인터뷰 또는 낭독으로 테마가 양분되어 있는데 '책, 이게 뭐라고'는 양쪽의 형식을 모두 아우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팟캐스트의 단점이라면 21세기북스, arte 등의 출판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북21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다 보니 북21에서 출간된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이다. 그 책들 중에서도 괜찮아 보이는 책들도 있었지만 이건 명백히 광고겠구나 싶은 책도 몇 권 보였다.
안타깝게도 장강명이 2019년 말에 하차하면서 휴방에 들어갔고 2020년 3월에 요조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시즌 3가 유튜브에서 시작되었다. 팟캐스트는 별도로 제작하지 않고 유튜브 영상을 소리만 따다 올렸는데, 유튜브의 문법에 맞추다 보니 에피소드 시간이 짧아짐에 따라 깊이 있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과도한 효과음이 들어가면서 기존 애청자들의 불만이 늘어났다. 결국 제작진은 5회 만에 팟캐스트 업로드를 중단하고 재정비 후 돌아오겠다는 공지를 올렸는데 그 후 지금까지 1년 동안 소식이 없다. 팟캐스트의 제작비 부담 등을 고려했을 때 유튜브로의 전환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준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는 매체인 책과 팟캐스트의 궁합을 너무 가볍게 본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장강명은 시즌 2를 진행하면서 방송에서 소개한 책에 관한 단상, 방송 뒷이야기, 평소 가지고 있던 책에 대한 생각 등을 밀리의 서재에 '책, 이게 뭐라고'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할 때 이 연재물을 읽었는데 이 팟캐스트를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선물과도 같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똑같은 제목의 책이 이 연재물을 바탕으로 나왔다고 알고 있는데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책, 이게 뭐라고'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다른 독서 팟캐스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방황하던 시기에 그나마 자주 들었던 팟캐스트는 '책읽아웃'이었다. '책읽아웃'은 인터넷 서점인 YES24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인데 작가 김하나와 시인 오은이 1주일씩 번갈아가면서 작가 인터뷰와 신간 소개를 진행한다. 이 팟캐스트 역시 관심 있었던 작가 위주로 몇 개의 에피소드를 골라 들었는데 '책, 이게 뭐라고'와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매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책, 이게 뭐라고'에 비해 한 에피소드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긴 점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나온다면 이 부분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김도연의 책 읽는 다락방'은 김도연이라는 진행자가 책을 읽어주고 간단한 코멘트를 덧붙이는,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과 비슷한 형식의 팟캐스트다. 진행자는 카페도 운영하고 글도 쓴다고 들었는데 이 글에서 소개한 여러 팟캐스트 중 진행자의 목소리로는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의 단점은 업데이트가 매우 불규칙하게 이루어지고 에피소드 자체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년에 입국해서 자가격리를 하던 시절에 4~5개 정도 듣고 구독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방금 찾아보니 작년 5월 이후 단 한 개의 에피소드만 업데이트되었다.
회사에 복직한 작년 6월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챙겨 들은 독서 팟캐스트는 없다. 대신 깨작깨작 네댓 개 정도 들어 보았는데 그중 하나는 '라디오 북클럼 김겨울입니다'였다. 사실 이 팟캐스트는 MBC FM 라디오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방송되는 프로그램이다. 진행자인 김겨울은 북튜브(책+유튜브) 계의 일인자로 '겨울서점'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나도 이 채널을 구독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 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진행자의 목소리가 사기급이다 보니 내용과 상관없이 가볍게 들을 만했다. 전반부에서는 고전을 한 편씩 선정하여 코너지기와 이야기를 나누고 후반부에서는 신간을 2~3권 정도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정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느껴지는 정형화된 모습이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꾸준히 팟캐스트를 듣기보다는 그냥 '겨울서점' 유튜브 채널을 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작가 유시민이 진행하는 '알릴레오 북's'도 몇 개 들어봤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대체로 상당히 무거운 책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읽어봤던 책과 관련된 서너 개의 에피소드만 들었다. 다루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흥미롭게 들을 수 있겠지만 다른 팟캐스트에 비해 좀 더 진지한 토론하는 분위기라 기본적으로 책은 재미를 위해 읽는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다소 진입장벽이 느껴졌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book21.com/podc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