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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n 01. 2021

팟캐스트 겉핥기 2 - 시사, 역사

이 글에서는 지적 허세 충족이라는 불순한 목적으로 듣기 시작한 시사 및 역사 팟캐스트 몇 개를 소개한다. 듣다 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계속 구독 중인 팟캐스트도 있다. 원래는 이런 분야의 팟캐스트를 매주 챙겨 듣기만 해도 지식이 저절로 쌓이리라 기대했지만 당연히 인생은 그렇게 달달하고 아름답게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내 경우에는 지식은 듣자마자 그대로 다른 귀로 흘러나가고 그 분야와 친숙해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만 애매모호하게 남아 있다. 


1. 시사: TED talks daily,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듣똑라)

지금도 구독하고 있는 팟캐스트 중 하나는 바로 'TED talks daily'다. 사실 이 팟캐스트가 시사 분야에 속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과학, 기술부터 경영, 인생, 교육 등 너무나도 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편의상 시사 분야로 분류하였다.


TED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지식을 15~20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으로 소개하는 플랫폼으로 유명한데 'TED talks daily'는 최근의 TED 동영상을 평일에 하나씩 음성만 들려주는 팟캐스트다. 동영상 사이트는 유학 가기 전에 영어 듣기 연습에 좋다고 들은 적이 있어서 몇 번 기웃거린 적이 있다. 팟캐스트는 박사과정의 끝이 조금씩 보이던 2020년 1월 정도부터 듣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를 많이 쓰지 못할 텐데 우여곡절 끝에 습득한 짧디 짧은 생존 영어 실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영어에 귀를 노출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참 기특하게도 한국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이 생각을 한 당일부터 팟캐스트 구독을 하면서 꾸준히 듣기 시작했다. 


주로 출근길에 걸으면서 이 팟캐스트를 듣는데 그날그날의 내 상태, 강사의 발음이나 말하는 방식 등에 따라 내용이 아주 잘 들리는 날도 있고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다. 15분 전후의 시간 동안 출근길에 영어를 들으면 보통은 그 내용이 듣는 즉시 날아가 버리지만 기억에 남는 내용이 아주 가끔씩 있긴 하다.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에 경제 칼럼을 쓰는 팀 하포드(Tim Harford)가 강연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에 관한 내용(링크)이 그 드문 예다. 그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멀티태스킹이 아닌, 여러 프로젝트 또는 업무를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 가지 프로젝트를 처리하다가 생산성이 떨어지면 다른 프로젝트로 눈을 돌리는 느린 속도의 멀티태스킹(slow motion multitasking)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내 지도교수님이 논문을 여러 개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하나에 집중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생산적이라는 취지의 비슷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TED 강연은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주제를 많이 다루며 최근에는 주로 지구 온난화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기후 변화(climate change)가 아닌 기후 위기(climate crisis)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기후 위기에 관한 내용을 다루는 'Countdown'이라는 스핀오프(spinoff) 팟캐스트도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종합하면 매일 짧게 영어 듣기를 연습하기에는 좋은 팟캐스트라고 생각한다. 강연자의 영어 발음도 다양하기 때문에 실전 영어를 익히는 데도 적합하다. 다만, 강연 속도가 느리지는 않기 때문에 영어 듣기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에게까지 권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이프(듣똑라)'는 중앙일보의 젊은 기자 4명이 모여서 만든 사내 벤처 형식의 팟캐스트다. 내가 잠시 들을 때는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였는데 유튜브 채널도 오픈하면서 제목이 살짝 바뀐 것으로 보인다. 시사 관련 내용을 어렵지 않게 풀어주고 화제가 되는 인물을 초대하여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박사과정 막바지에 2~3주 정도 열심히 들었는데 당시 한국 뉴스를 꽤 보던 때라 새롭게 느껴지는 내용이 많이 없어서 계속 구독을 하지는 않았다.


이 팟캐스트의 특징이라면 진행자 4명이 전부 여기자인데 진행자들이 동년배의 젊은 여성을 잠재적인 주 시청층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끔씩 초대하는 선배 기자나 인터뷰하는 사람들도 거의 모두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성인 내가 듣기 불편할 정도의 내용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2. 역사: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

역사에 대한 관심이 대학교 때부터 커졌는데 막상 역사 분야의 팟캐스트를 들을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정기적으로 듣던 팟캐스트가 하나둘씩 끝나면서 다시 정착할 곳을 찾다가 마침내 팟캐스트 앱 검색 창에 '역사'를 입력했다. 그중 구독자도 많고 4년 이상 매주 1회씩 꾸준히 업로드된 팟캐스트인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전문세)'를 알게 되었다. 영국에 6년 가까이 살다 왔으면서도 영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 자신에 못마땅해하고 있었는데 마침 전문세에서 영국사를 다루고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듣기 시작했다.


팟캐스트의 진행자는 허진모 석사와 개그맨 장웅이다. 스포츠 중계로 따지면 허진모 석사가 해설위원 겸 전문가 역할, 장웅이 아나운서 역할을 맡고 있다. '허진모'는 가명인데 이 분의 정체는 네이버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나올 정도로 이미 알려져 있고 장웅도 중간중간 이 사람의 정체를 암시하는 농담을 툭툭 던진다. 학부와 석사까지 역사학을 전공했고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이후로도 본업과 관계없이 계속 취미로 역사 공부를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시대와 국가를 넘나들면서 역사 전반에 박식한 편이고 이 지식을 적절히 엮어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다. 또한 목소리도 성우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좋은 편이다. 장웅은 한때 개그콘서트에서 언저리 뉴스라는 코너를 진행하면서 인기를 얻었던 개그맨이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독자를 대신하여 궁금한 질문을 해 주고 때로는 김 빠지는 농담과 아재 개그를 던지며 자칫 심각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이완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팟캐스트는 한 왕조(또는 국가)를 선정하여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까지 특정 시대를 개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루는 국가나 왕조는 보통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양과 서양에서 교대로 선정한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대 문명부터 시작하여 지금에서야 중국의 송나라 왕조를 파고 있으니 각 왕조를 얼마나 자세하게 다루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지금까지 축적된 에피소드가 너무 방대하여 감히 다 들을 엄두는 내지 못했는데 그중에서 삼국지 시리즈는 모두 찾아들었다. 참고로 삼국지의 배경이 된 시기는 약 100년인데 삼국지연의의 여러 판본과 실제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을 비교해 가면서 무려 21주 동안 이 시기를 입체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전설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작은 아쉬움이 있다면 각 사건이 일어난 연도나 한 왕조의 역대 왕을 '암기'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연도나 왕을 언급하면서 이 당시 다른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고 어떤 왕이 집권하고 있었는지 비교해 주는 부분은 동양사와 서양사를 유기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역사 공부를 할 때 사건이나 왕에 대한 지식은 중요한 기초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사자심왕 리처드가 죽은 연도인 1199년이 참 기억하기 쉽다든지, 프랑스 카페 왕조의 역대 왕은 첫 글자를 따서 '위로앙 필루루 필루루 필필루 장필샤'(위키백과 보고 쓰는 것이다.)로 외우면 된다든지 하는 말이 잊을 만하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학창 시절 암기를 주로 강조하던 역사 수업이 떠오르면서 슬그머니 반발감이 올라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재미있게 구독하고 있는 팟캐스트다. 챙겨 듣는다고 해서 역사 지식이 술술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다는 기분으로 들으면 좋을 것 같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ideas.ted.com/quiz-which-ted-talk-are-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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