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에서 소개할 팟캐스트의 공통점은 '어쩌다, 우연한 기회에 들었는데 이렇게 웃겨?'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 과학 모두 평소 내 관심분야는 전혀 아니었는데 우연히 접했을 때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자주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생활, 아이 출생, 코로나19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결혼 후에 사실상 영화와는 담을 쌓고 지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결혼 전에 영화광이었던 것도 아니다. 대화 중에 안 봤다고 얘기하면 '그 영화를 아직까지 못 봤다고?'라는 반응을 자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영화가 수도 없이 많을 정도다. (예: 친구, 마블 시리즈 등) 집에 비디오 재생기(VTR)를 들여놓지 않으신 부모님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영화에 조금이라도 열정이 있었다면 그런 역경 따위는 가볍게 극복했을 테니 그냥 애초부터 내가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몇 개월 전까지 영화 리뷰하는 유튜버를 한 명 구독한 적이 있다. TV 프로그램인 방구석 1열을 몇 번 보다가 알게 된 유튜버인데, 영화 줄거리를 소개할 때 다른 영화의 장면과 대사를 적재적소에 갖다 붙이는 능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만드는 유튜브 동영상은 수준 미달의 영화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것이 주된 소재였는데 모종의 이유로 유튜브 활동을 중단하기 전까지는 그 채널을 즐겨 봤었다.
이 유튜버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해서 몇 번 들었던 팟캐스트가 바로 '씨네타운 나인틴'이었다. '씨네타운 나인틴'은 SBS의 라디오 피디 세 명이 무려 2012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계속해 오고 있는 팟캐스트다. 내가 이 팟캐스트를 들었던 작년 하반기에는 원년 멤버 중 이재익, 김훈종 피디가 앞에서 언급한 유튜버, 초짜 영화 평론가와 함께 진행하고 있었다.
이 팟캐스트의 특징은 정말 미친 듯이 웃기다는 점이다. 라디오 피디 하면 왠지 감성적이고 순수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이들은 쉴 새 없이 온갖 섹드립과 개드립을 날린다. 보통 한 주에 두 편이 업로드되는데 첫 번째 편은 사연 소개와 농담 따먹기가 주를 이루고 두 번째 편에서 영화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언제 농담 따먹기를 했냐는 듯 영화 이야기를 할 때는 다시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분석에 임하는데 이러한 두 피디의 반전 매력이 이 팟캐스트의 장수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에 개봉한 영화를 주로 다루다 보니 내가 영화의 기본 내용이나 설정을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팟캐스트의 내용을 전혀 따라갈 수가 없게 되어 언제부턴가 듣지 않게 되었다.
이와 비슷한 콘셉트의 팟캐스트로 '씨네마운틴'이 있다. 작년 여름에 시작했기 때문에 첫 화부터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고 지금도 구독 중이다. 코미디언 송은이와 영화감독 장항준이 진행을 하는데, 시작 부분에서 송은이가 팟캐스트를 소개하는 부분을 기억나는 대로 쓰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영화라는 산봉우리를 정복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입 등반을 시작합니다. 대화가 산으로 가는 영화 토크쇼 시네 마운틴!' 이 소개를 듣고 나면 영화 평론을 가장한 만담 쇼라는 이 팟캐스트의 정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팟캐스트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영화를 주로 다룬다는 점이다. 그렇게 유명한 영화조차 보지 않았어도 팟캐스트를 듣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영화감독, 주연배우에 대한 소개가 전체의 2/3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시간에도 소개 자체보다는 진행자인 장항준과 송은이가 늘어놓는 맥락 없고 웃음만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회차가 진행될수록 장항준은 점점 얘기할 만한 개인 에피소드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초조함을 호소하는 한편 송은이는 중간중간 기회만 있으면 노래를 불러 장항준을 질색하게 만들면서 웃음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는 두 진행자의 티키타카는 이 팟캐스트를 단번에 높은 순위에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팟캐스트를 토대로 장항준은 예능계에서 떠오르는 신성으로 발돋움했다.
팟캐스트가 영화보다는 개그와 만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마지막 영화를 찍은 지 좀 되었지만 여전히 장항준은 영화감독이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볼 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에 팟캐스트의 내용이 영화 소개 및 평론의 측면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다른 프로그램과 공동으로 방송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독서 팟캐스트인 '책, 이게 뭐라고'도 여러 팟캐스트와 공동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그중 독보적으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바로 '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과장창)' 팀과의 방송이었다. 그렇게 '과장창'이라는 팟캐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책, 이게 뭐라고'가 휴방에 들어갔을 때(그리고 다시는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을 때) 본격적으로 구독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나는 이 팟캐스트의 시즌 2와 시즌 3만을 챙겨 들었는데 시즌 2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궤도, 엑소와 윤태진 아나운서가, 시즌 3은 지대넓얕의 공동 진행자로 유명한 이독실과 기상캐스터 김가영이 진행하였다. 진행자들 사이의 호흡이 좋아 팟캐스트의 재미를 더했지만, 사실 진행자 구성이 남성 과학 전문가와 여성 아나운서로 되어 있어 성 역할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라는 공공기관에서 후원하여 제작한 팟캐스트라 이런 면에서는 한계를 보인 것이 아닐까 감히 추측을 해본다.
이 팟캐스트에서는 과학의 여러 분야를 알기 쉽고 재미나게 설명해 주는 것은 기본이고, 생활 속에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가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주 파헤쳤다. 무엇보다도, 재미없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온갖 드립과 헛소리가 적절히 배합되면서 듣다 보면 아주 웃긴다. 시즌 2에서는 천문학 전공자인 궤도가 천문학 관련 내용과 함께 웬만한 물리학, 수학 이론까지 다루었고 의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엑소가 생물학 쪽 내용을 주로 이야기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때때로 대중적으로 유명한 교수들(김상욱 교수, 정재승 교수 등)이나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 유튜버들(1분과학, 과학쿠키, 과학드림 등)이 초대손님으로 나와서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시즌 3에서는 매 에피소드에 초대손님이 있었고 진행자 중 과학 전문가 역할이었던 이독실은 이들을 받쳐주는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내가 듣기 시작했던 시즌 2가 전성기였고 시즌 3은 아쉬움을 그나마 달래주는 마지막 불꽃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즌 3은 시작한 지 약 4개월 만에 종료가 되었기 때문이다. 시즌 3에 큰 애정은 없긴 했지만 막상 끝나고 나니 매주 들을 과학 팟캐스트가 없어져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과학하고 앉아 있네'라는 팟캐스트는 매주 두세 시간 이상의 방송을 10년 가까이해 온 과학 분야 팟캐스트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고 한두 번 들어보려 시도했는데 길이가 너무 길고 '과장창'에 비해 개그의 재미가 떨어져 계속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과학과 관련된 진지한 내용을 들어보고 싶은 분들에게는 추천할 만한 팟캐스트라고 생각한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m.podty.me/cast/21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