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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Nov 14. 2021

회사원과 연구자 그 사이

어느덧 박사학위를 받은 지 1년 4개월이 넘었다. 학위 수여가 확정되자마자 회사에 복직했으니 대학원을 마치고 일한 기간도 그 정도 된다. 처음 반년 정도는 그나마 대학원 때 하던 연구에 가까운 일을 했고 이후에는 연구라고 부르기에는 상당히 애매모호하지만 또 연구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업무를 하고 있다. 대학원 때와는 달리 월급이 나오고 논문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없으니 경제적·정신적으로는 훨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 회사로 복귀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회사에서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내가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논문을 써야 하는 생활에 지치다 보니 어느 정도까지는 주어지는 일을 하면 월급이 나오는 회사 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막상 유학 전에 회사 다닐 때는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지겨워서 순수하게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보고 싶어 했던 걸 생각해 보면 인간은 정말 간사한 동시에 건망증도 심한 존재인 것 같다.


원래 생각했던 목표는 회사 일도 열심히 하되 적어도 2~3년에 논문 하나 정도는 꾸준히 낼 수 있는 연구자가 되자는 것이었다. 박사과정을 마쳤다는 것은 한 분야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 관점을 학문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므로 이 관점과 도구가 녹슬지 않기 위해서는 계속 갈고닦을 필요가 있다. 또한 거의 전적으로 논문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교수와는 달리 논문 쓰는 일이 본업이 아니어서 논문에 대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아주 가끔씩은 논문을 쓰다 보면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 상급자 중에도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들이 꽤 있는데 꾸준히 학술 논문을 쓰시는 분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사실 회사 업무 때문에 바쁜 일이 많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분들이 최신 이론에 대한 지식 없이 예전에 배운 지식에만 안주하거나 예전에 배운 지식조차 잘못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본인들의 근거 없는 직관만을 내세우기 시작하면 골치가 아파진다. 이 분들을 보다 보면 논문을 꾸준히 생산해 내지 않는 박사는 학위 취득 당시에 얻었던 낡은 지식으로 세상을 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한번 계속 논문을 써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된다.


지금까지는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회사원과 연구자 생활을 병행하기는 했었다. 졸업하고 회사에 복직하자마자 지도교수와 시작한 연구가 하나 있어서 틈틈이 데이터 작업을 하고 논문을 읽으며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가끔씩 미팅도 갖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같이 프로젝트를 하던 지도교수도 다른 일로 바빠서 2~3개월씩 연락이 없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회사 생활에 부담이 될 정도는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 업무가 많아지면서 회사원과 연구자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외줄 타기 같은 생활에 조금씩 위기를 느끼고 있다. 위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긴 한데 가설과 데이터 간에 간극이 있어서 진척이 더딘 편이고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면 새로운 논문에 대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거나 기존 미완성 논문을 고치는 작업을 할 수도 있을 텐데 절대적 시간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정신적으로 이런 작업을 시작할 여유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단 졸업논문의 첫 번째 챕터를 학술지에 투고해 놓긴 했는데 결과가 나온 다음에나 이 논문의 후속 작업을 해볼까 하면서 은근슬쩍 연구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내가 교수가 되었어도 강의, 행정 업무 등으로 인해 정작 연구를 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고 들었다. 예전에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행정업무 부담 때문에 연구할 시간이 없다는 식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옆에서 지켜본 바로는 연구 외적인 업무 부담은 외국 대학 교수들이 더 큰데도 이들의 연구 실적이 훨씬 더 우수한 편이었다. 결국 교수들도 연구는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업무고, 절대적 시간 부족이 연구 실적이 적거나 없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고 박사학위 받은 후 아무 연구도 안 하고 고인물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1주일에 두세 번 정도 하루에 1시간이라도 짬을 내서 꾸준히 연구 관련 활동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news1.kr/articles/?1575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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