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유행이 우려되는 이유
올해 1월에 작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상주인 사촌동생과 맞절을 했다. 10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있어서 어렸을 때는 명절에 만나도 데면데면했다. 이번에 도대체 몇 년 만에 얼굴을 보게 된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식사를 하고 있는데 사촌동생이 다가와서는 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후 잠시 이어진 어색한 침묵을 깨고 나에게 질문했다. “오빠는 MBTI가 뭐예요?”
그냥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MBTI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뾰족한 반응이 튀어나왔다. “너 심리학 전공한 거 아니었어?” 사실 사촌동생은 심리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분명히 전공자로서 MBTI 테스트 결과가 한 사람의 성격을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텐데도 자연스럽게 화제로 삼은 것이다.
MBTI가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많이 접하는 매체인 유튜브에서는 수많은 영상이 조회되고 있으며 인터넷 게시판에도 MBTI 관련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필자는 젊은 세대도 아니고 MBTI 테스트 자체에 호의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지식도 짧은 편이었고 그냥 아내가 권해서 인터넷에서 테스트를 한 번 해보기만 했다. 사촌동생과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후 90년대생 후배 직원들과 식사를 할 때 두어 번 이 테스트 결과를 대화의 소재로 삼아본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란 기억이 있다.
이렇게 대유행 중인 MBTI 테스트에 과학적 근거는 있을까? MBTI 이전에 유행했던 혈액형 성격설에 비해서는 과학적으로 보인다. 혈액형 성격설은 혈액형인 A형, B형, O형 및 AB형을 사람의 성격과 연결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던 사이비 과학이다. 그에 비해 인터넷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16 Personalities’ 같은 간이 MBTI 테스트는 60개 문항에 대한 답변을 바탕으로 점수를 매겨 성격 유형을 결정하므로 최소한의 과학적 근거는 확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성격 유형이 16가지나 되니 유형이 4개에 불과했던 혈액형 성격설에 비해 인간 성격의 복잡성을 더욱 잘 반영하고 있는 테스트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MBTI 테스트 역시 엄밀하게 과학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는 작가인 마이어스와 브릭스가 1944년에 카를 융(Carl Jung)의 분석심리학 모델을 기반으로 고안한 성격 유형 테스트다. 이 테스트는 측정하려는 목표와 실제 측정하는 항목 간에 관련성이 높지 않고, 재검사를 했을 때 검사 결과의 일관성이 낮아 그동안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격은 연속된 분포 상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작은 점수 차이를 확대 해석하여 무리하게 성격의 유형화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가 취약하다.
이러한 단점을 정확히 인지하면서 MBTI를 여러 심리학 테스트 중 하나로만 생각하고 테스트 결과를 하나의 참고 지표로 받아들인다면 큰 문제가 없지 않을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MBTI 결과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성격을 추측하는 용도로 사용하며 심지어 채용 시 활용하는 기업까지 있기 때문이다.(링크)
그냥 재미있자고 하는 이야기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재미있자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웃으면서 그 속에 반영되어 있는 사고방식을 무의식 중에 수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약 10년 전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었던 외모에 대한 평가가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이와 같이 MBTI 테스트 결과에 대한 열광도 과학적 사고방식의 확산과 함께 점차 가라앉기를 소망해 본다.
* 이 단락의 내용은 위키백과의 'MBTI' 항목을 참조하였다.
** 이 글의 초안을 읽고 좋은 의견을 주신 백우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