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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Oct 03. 2022

몰입: 공부나 일할 때만 필요한 것인가?

10여 년 전 입사 후 신입직원 연수가 시작된 날, 연수용 물품과 함께 대여섯 권의 책을 받았다. 다른 책의 제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황농문의 『몰입 Think hard!』라는 책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제목에서부터 자기 계발서의 느낌이 물씬 풍겨 딱히 손이 가지는 않았지만 이왕 받은 책이니 읽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예상대로 책 내용이 흥미롭지는 않았고 단지 그 당시 연수 담당자가 가지고 있던 바람직한 신입직원 상이 업무에 몰입하는 모습이라는 씁쓸한 사실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몰입’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몰입을 업무나 교육의 성과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몰입’이라는 표현이 주로 자기 계발서의 소재로서 처음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터넷 서점에서 ‘몰입’을 검색하면 나오는 책들의 제목이나 부제에는 ‘잠재력’, ‘성과’ 등의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라는 학자가 지은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는 대놓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몰입의 대상을 일로 한정시키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제는 몰입을 무조건 공부나 업무와 연관시키면서 성과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보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나도 박사과정 시절 거의 매일 음악을 들으면서 사실상 무아지경 상태에서 두세 달에 걸쳐 방대한 양의 미시 자료를 가공한 경험이 있는데 이 작업이 박사학위 논문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공부나 업무를 할 때 몰입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부나 업무에 몰입하여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공부나 업무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에 공부 및 업무에 대한 몰입만을 강요한다면 구태의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일상을 살아가거나 취미를 즐기는 가운데서도 충분히 몰입과 비슷한 경험을 통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흔히 몰입은 명상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상태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반드시 명상을 통해서만 무아지경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제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라산 백록담을 자주 올랐는데 오랜 시간 산에 오르면서 몸이 힘들어지면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산과 그 산을 오르는 나의 육신만이 느껴지는, 몰입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일상생활에서 하는 ‘멍 때리기’도 어떤 면에서는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며 한 작가는 매일 아침 달리기를 통해 ‘잡생각이 소각’되면서 삶의 질이 크게 높아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링크) 이렇듯 취미생활에 대한 몰입도 인생을 풍부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느덧 출세나 성공보다는 개인의 행복이 더욱 중시되는 시대가 되었다. 이와 더불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공부나 일을 통해 이룬 성공이 결코 노년의 삶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대도 왔다. 그런 만큼 공부나 업무가 아닌 취미 생활 등에 몰입하는 것을 한심하게 여기는 풍조는 시대착오적이다. 앞으로 더욱 흔해질 백세 인생을 길고 풍요롭게 즐기기 위해서는 본인이 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몰입할 수 있는 자유와 다른 사람들의 몰입을 편견 없이 인정하는 태도가 모두 필요하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news.sktelecom.com/13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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