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uswell Nov 13. 2022

가끔 영국의 음식문화가 그립다.

음식이 그리운 건 절대 아니고...

주로 먹고살았던 음식만을 놓고 보면 내 인생은 상당히 널뛰기가 심한 편이었다. 맛의 고장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으며, 대학교 때도 그 지역 출신 학생들이 모인 기숙사에서 동향 출신 조리사 분들이 해 주시는 음식을 먹으며 지냈기 때문에 음식 수준에 불만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부터는 돈도 벌기 시작했고 회식도 많았기 때문에 이전에는 접해 보지 못했던 음식들을 그럭저럭 많이 먹고 다닌 편이다. 그러다가 음식문화가 척박하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6년 동안 생존을 위해 먹는 행위를 계속하면서 미각이 많이 겸손해졌다. 학위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매 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개인적인 부침을 겪었던 와중에도 '강프로, 식사는 잡쉈어?' 같은 말을 자연스럽게 인사말로 쓰는 국민답게 한국인들의 음식에 대한 애정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온갖 종류의 먹방과 쿡방이 새로운 형식으로 진화하면서 여전히 대중매체와 유튜브를 지배하고 있다. 맛집 탐방을 취미로 내세우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맛집에서 먹은 음식 사진을 후기와 함께 정성스럽게 게시한 블로그 글도 넘쳐나고 있다. 이러한 게시물 중에는 광고글의 비중도 높아지면서 제대로 된 음식점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다른 검색어를 이용하고 검색할 때 옵션을 추가하는 등 고급 기술이 필요할 정도다.


얼마 전 신동엽이 출연한 성시경의 유튜브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이 영상에서 신동엽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략 '맛있는 음식점 한 군데를 새롭게 알게 되면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이 음식점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 사람의 취향이니 존중하고 연예인이니 어느 정도 과장해서 표현하기도 했겠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어쩌면 맛집에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국인들이 음식과 맛집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풍부한 음식문화를 나타내는 증거일 수도 있다. 영국의 경우 척박한 음식문화와 영국인들의 음식에 대한 낮은 관심 중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불분명하지만 확실히 두 현상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뾰족한 취향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볼 때 맛집에 대한 과몰입은 음식문화의 발전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내가 먹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랜 시간 기다림을 감수하면서 유명한 맛집을 찾아가는 열정까지는 없어도,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고 먹는 양도 덩치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영국에서 인생의 쓴 맛을 한 번 경험해서 그런지 맛집과 음식에 애착을 보이는 문화가 과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웬만한 음식점이 다 맛있는 것 같은데 굳이 왜 식사 장소 결정을 위해 이렇게까지 에너지를 많이 쓰는지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다른 글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몇몇 조사에 따르면 17~33%의 영국인들이 최근 2년간 매일 똑같은 음식을 점심으로 먹었다고 한다.(링크) 기본적으로 맛집 탐방이 나의 취미가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가끔 메뉴나 음식점 선정이 스트레스로 다가올 때면 무엇을 먹을지에 대해 무심한 영국의 음식문화가 그리울 때도 있다. 사람의 관심은 결국 한정된 자원이고 가치를 두지 않는 분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관심을 가져야 되는 분야에는 적절한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음식이나 맛집에 열광하는 분위기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realfoods.co.kr/view.php?ud=20161007000183

작가의 이전글 몰입: 공부나 일할 때만 필요한 것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