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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n 18. 2022

삼국지 영걸전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그렇지만 게임은 게임일 뿐

아마 내 브런치의 글을 몇 편 읽은 독자라면 내 이미지가 컴퓨터 게임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아주 정확하게 본 것이다. 동년배에 비해 내 인생은 게임과 거리가 먼 편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친구가 하는 슈퍼 마리오 게임을 보는 걸 더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엄청나게 유행했던 스타크래프트에도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 삼국지 영걸전과 대항해시대 2였다. 삼국지 영걸전을 하면서는 아버지께서 빌려다 주셔서 재미있게 읽었던 이문열 삼국지의 내용을 떠올릴 수 있었고, 원래부터도 사회과부도 보는 걸 좋아했는데 대항해시대 2를 하면서 더욱 지도와 친해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삼국지 영걸전은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2~3년 정도에 한 번씩 생각날 때마다 해보는 게임이 되었다. 왜 가끔씩 생각이 나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짐작되는 이유는 있다. 한창 박사과정 논문을 쓰던 시절, 집에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London Evening Standard)에 나오는 스도쿠를 했었다. 아마 논문에서 내가 나에게 스스로 낸 문제는 속 시원하게 풀지 못하지만, 이 스도쿠 문제만큼은 풀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곳곳에서 적들이 출몰하는데 현실에서는 그들에게 굴복하더라도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상대편을 쓸어버리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 심리가 아닐까 싶다.


요즘 회사에서 '시절이 하 수상'하다는 말에 어울리는 상황을 자주 겪고 있어서 그런지 최근에도 삼국지 영걸전을 찾게 되었다. 보통은 초반에 과하지 않은 수준에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동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가장 빠른 시간에 끝을 보는 것을 목표로 게임을 했다. 사실 지난 2주 정도 글을 안 쓴 이유가 이 때문이었는데, 오랜만에 글을 쓰려니 소재가 딱히 생각이 안 나서 삼국지 영걸전을 하는 동안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을 써보고자 한다.


1.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또는 뭇매에 장사 없다.)

처음 게임을 접하는 입장에서 삼국지 영걸전은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게임이다. 레벨이 대략 동등한 상황에서도 우리 편의 숫자가 상대편보다 작은데, 초반에 레벨을 높이기 위한 노동을 하지 않고 게임을 진행시키는 데만 집중한다면 후반부에는 우리 편 장수들의 레벨이 적의 잡졸에도 한참 못 미치게 되면서 어려움이 더해지게 된다.


그렇지만 충분히 길은 있다. 지형의 특성 등을 이용하여 아군과 한 번에 접촉하는 적의 수를 최대한 줄인 다음 집중 공격을 통해 하나씩 적을 제거하는 것이다. 아무리 적군이 레벨이 높고 온갖 아이템을 장비하고 있어 방어력이 높더라도 이러한 집중 공격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객관적으로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특히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2. 매사에 완벽해지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검색 사이트에 '삼국지 영걸전 공략'을 입력하면 소위 1599(최종전에 출전하는 15명 장수들의 레벨을 최대치인 99까지 만드는 것)를 달성하기 위해 초반부터 모든 턴을 소모하면서 극단적인 노동을 해야 하는 공략이 넘쳐난다. 이러한 공략을 읽다 보면 참 대단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을 이렇게까지 일하듯 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숨이 막혀 온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이 전략을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이렇게까지 완벽주의에 가까운 전략을 선택하지 않아도 끝판을 깨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앞에서 언급한 선택과 집중을 기본으로 각종 아이템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평균 50 중반대의 레벨로도 충분히 게임의 끝을 볼 수가 있다. 어차피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면 너무 완벽만을 추구하지 않고 조금 돌아가는 방법을 택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3. 시간이 흐르면 시야가 넓어지고 성숙해진다.

삼국지 영걸전의 마지막 전투는 세 판이 연속으로 진행되는데 상대편에게 엄청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판이 넘어갈 때마다 우리 편의 병력은 그대로지만 상대편은 원래 상태로 회복이 되고, 두 번째 판에서는 우리 편의 병력만 반토막이 난 채로 시작한다. 그만큼 어렵긴 하지만 사실 이 게임에서 가장 어려운 전투는 마지막 전투가 아닌, 게임 중간 정도에 나오는 장판파의 전투다. 이 전투는 두 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전투와 비슷하게 판이 넘어갈 때 상대편만 회복이 된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는 발이 느린 '민중'을 호위해야 하는 임무까지 더해지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난이도가 높아진다.


어렸을 때 처음 게임을 했을 때만 해도 도저히 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이동력을 높여주는 적토마 아이템을 민중에게 헌납하고서 겨우 돌파하곤 했다. (민중은 일종의 NPC이기 때문에 아이템이 한 번 넘어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좀 더 경험이 쌓이면서는 적토마보다 이동력이 살짝 낮은 적로를 민중에게 주어 희생을 조금 줄이기도 했고 점점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결국에는 쓸데없이 말을 바치지 않고도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물론 1599 전략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전투에서도 역공격을 통해 적을 전멸시키기도 하지만 나는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려 한다.


요점은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도,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길을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하나의 임무는 성숙해질 정도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이러한 경험치가 축적되면 낯선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삼국지 영걸전을 통해 배웠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jsix.tistory.com/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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