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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May 21. 2022

영혼 없는 전문가 되기

몇 주 전에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었던 영상이 하나 있다. 에버랜드에 있는 놀이 기구 중 하나인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촬영된 이 영상(링크)에서는 한 진행요원이 열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태도로 안내 방송을 한다. 그런데 안내 방송 자체는 유명한 래퍼도 쉽게 흉내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고퀄을 자랑한다. 누리꾼들은 이 직원에게 '소울리스좌'라는 별명까지 붙여주면서 영상에 열광했는데, 원래 4월 말까지만 아마존 익스프레스에서 일하기로 했던 그녀는 최근에 에버랜드의 광고까지 찍었다고 한다.


얼핏 보면 작년에 브레이브 걸스가 갑자기 역주행을 한 사례와도 비슷해 보이는데,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 바로 브레이브 걸스는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군부대 공연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호감을 샀지만, 소울리스좌는 영혼 없이 무심하게 맡은 일에 임하는데도 그 결과가 너무 훌륭해서 사람들이 흥미를 보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열정의 온도차에는 연예인과 놀이공원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직업 상의 차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소울리스좌가 어떤 이유로 인해 저렇게 영혼 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는 직접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는 이상 쉽게 헤아리기 어렵다. 영혼 없음이 원래 그녀가 삶을 살아가는 기본 태도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을 당한 경험이 있어서 방어 기제를 발동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굳이 억지로 열정을 짜내어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그녀의 안내 방송이 충분히 사람들을 신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이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좀 더 일반화시켜 보면 결국 업무에 임하는 태도보다는 업무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당연하지 않은 사실을 당연한 척해야 하는 분위기에서 '내가 이상한 건가?'라고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업무의 특성 때문이든, 상사의 능력 부족 때문이든 간에 업무 성과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태도를 업무 성과와 사실상 동일시하는 사례는 주변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소울리스좌의 영혼 없음에 끌리는 것은 어쩌면 업무에 대한 영혼과 열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결국 상사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과 애사심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질되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 회사에 온갖 흥미로운 상황이 워낙 많이 발생하다 보니 내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더라도 업무에 임하는 태도 따위는 상관없이 정말 업무 성과로만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직장에서의 내 목표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fnnews.com/news/202205141416493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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