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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Apr 17. 2022

비판에 익숙해지기

작년에 대학원 졸업 논문의 첫 번째 챕터를 학술지에 보냈는데 얼마 전에 거절 메일을 받았다. 사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꽤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기 때문에 애초에 보낼 때부터 거절당할 것을 예상하고는 있었다. 아예 심사위원에게 보내지도 않고 바로 거절하는 경우(보통 desk reject이라 부른다.)가 아니라면 투고 후 결정까지 평균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들었는데 내 경우에는 거의 6개월 가까이 되어서야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처리 기간이 상당히 길게 걸린 셈이었다. 당연히도 거절 결정에 기분이 좋을 리는 없으니 일단은 익명 심사위원의 의견을 빠르게 훑어보기만 했는데 수긍할 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내 논문의 분석 방식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설마 학술지에서 거절 한 번 당했다고 기분 나빠서 이 글을 쓰고 있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맞다. 이성으로는, 듣기 싫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비판에 귀를 닫는 순간 꼰대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탑승하게 된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옳은 말이라고 해도 쓴소리를 들으면서 '나한테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이니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들어야지'라는 마음이 생기는 경우는 아직까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대학원 때 잠시 경험했던 외국의 학계에서는 서로의 연구에 대한 비판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절대 좋게 좋게 넘어가 주지 않고 연구의 약점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을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직업윤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에 조용조용 이야기를 하면서 신사적인 모습을 보이던 교수들도 세미나 때는 엄청나게 공격적이고 살벌하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면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한 비판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외국의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고마워할까? 세미나에서 이들이 비판을 수용하는 방식은 확실히 나에 비해 훨씬 성숙해 보이긴 했다. 이들이 속으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아마 면전에서 쓴소리를 들을 때 그들도 100% 고마운 마음을 갖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정말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인 내 지도교수도 세미나 발표에 대한 조언을 해 주면서 세미나에서 받는 질문을 은연중에 깨부숴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에게 들켰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나에게 자신감을 주기 위한 의도이긴 했지만 비판 앞에서 짜증을 느끼는 건 (다행스럽게도)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모양이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사고를 갖기 위해서는 분명 나에 대한 비판에 더욱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문제는 이번 생에서는 내가 쓴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상하지 않는 이순(耳順)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성숙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다. 그나마 내가 가끔씩 해왔고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방법은, 비판을 접하는 자리에서 고마움이 느껴지면 기쁘게 그 비판을 수용하고 짜증이 솟아나기 시작하면 일단 고맙다고 말한 후 며칠 후에 다시 한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방법이다. 시간이 지나고 불쾌한 기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일리가 있다면 그 비판을 수용하려 노력하고, 아니라면 그냥 무시하는 것이다. 위선 아니냐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비판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는 어려운 이상 열심히 노력한다면 비판에 익숙해지면서 무덤덤한 척하는 사람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표지 사진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22MJC5VS4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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