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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n 24. 2023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유학, 결혼,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어느덧 먼 옛날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지만 나에게도 저녁때 술을 마신 후 2차로 노래방이란 곳에 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노래방에서 가끔 자우림의 '일탈'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선천적 재능과 후천적 노력이 모두 부족한 고음불가였던 터라 남자 키로 전환하고도 두세 키는 더 내려야 겨우 음이탈을 하지 않고 부를 수 있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그 당시에는 내 상황이 이 노래의 가사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노래를 좋아했을 텐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가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화끈하고 신나는 시기였고 이 노래를 불렀던 나는 겉멋이 많이 들어있었던 것 같다.


얼마 전 몇몇 회사 동기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는, 나름 유부남에게 화끈하고 신나는 상황이 생겨서 연락을 돌렸다. 집에서는 아이 보느라 바쁘고 회사에서는 고참 과장이라는 명목 하에 팀장과 젊은 직원들 사이에 껴서 끝없이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지쳐 있는 40대 초중반의 회사원들. 나도 그랬지만 웬만한 얘기에는 시큰둥한 태도를 보이며 '잘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하다가도,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회사에 떠도는 소문들이 화제에 오르면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딱 회사 이야기 정도가 거의 유일한 삶의 활력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이렇게까지 한탄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내일이라는 날을 인생에서 지울 기세로 술을 마시다 보면 다음 날 엄청난 숙취에 시달리듯이,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재미있는 일은 마냥 재미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화끈하고 신나는 상황을 만들 체력이 부족해지긴 했지만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신중해진 측면도 분명 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라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나를 비롯한 회사 동기들의 변화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는 데 더욱 능숙해진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이 정말 말을 안 듣고 배우자가 가끔 못 살게 군다고 하소연하지만 분명 가족의 존재로 인해 미소 지으면서 작지만 자주 발생하는 행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또한 딱히 재밋거리가 없는 회사 생활 속에서도 마음 놓고 함께 누군가의 뒷담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도 행복한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왠지 '비겁한 변명입니다!'라는 영화 실미도의 대사가 귀에 들리는 것만 같다. 그래도 예측가능하고 잔잔한 인생이 나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당장 화끈하고 신나는 일을 찾아 나설 심적 여유는 없더라도 중요한 순간에는 화끈하고 신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마음의 불꽃은 항상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다.


* 표지 그림 출처: http://bir.co.kr/book/133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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