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부터 일종의 비서와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다. 당연히 예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은 없었고 8개월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마냥 익숙하지는 않다. 그동안 쭉 회사 내에서 자료의 생산자였다가 자료의 수요자 곁에서 함께 자료를 읽고 있다 보니, '업무시간을 이렇게 보내도 되나'와 '나중에 어떻게든 다 도움이 되겠지' 사이에서 생각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자리의 특성상 임원들과 직원들 간 회의나 식사 자리에 참석할 일이 많고 그런 만큼 회사 어법을 질릴 정도로 많이 접하고 있다. 회사에서 쓰이는 말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과 크게 다를 리 없지만, 우리 문화가 예의와 겸손을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지 낯선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쓰이는 말이 좀 더 정중하고 완곡하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정중한 회사 어법은 권할 만하고 나도 다른 직원들에게 많이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문화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회사 어법 중에 유독 내 귀에 거슬리는 표현이 두 가지 있다. 사실 이 자리에 오기 전부터 어느 정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자주 듣게 되면서 하루빨리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표현들이다.
첫 번째는 '우리'라는 표현을 써야 하는 대목에서 '저희'를 쓰는 경우다. 임원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 직원들이 '저희 팀'이나 '저희 부서'라고 하는 건 문제가 없지만, '저희 회사', 심지어는 '저희 나라'까지 나오면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회사 상사 앞에서 최대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자세로 말을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이런 표현을 쓰게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말을 듣고 있는 임원들도 '우리 회사'와 '우리나라'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저희 회사'와 '저희 나라'라는 말을 쓰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위치까지 낮추게 됨을 인식하고 바른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
두 번째는 (회사와 회사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다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상급자인 누군가를 '모신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다. 이 말 자체는 어법 상으로 전혀 틀리지 않지만 회사에서 사용하기에는 표현의 맥락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모시다'는 '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를 가까이 받든다'는 뜻이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모신다'는 표현이 은연중에 회사 상사를 '웃어른'이나 '존경하는 이'와 동일한 위치에 놓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같이 일했던 상사 중 '모셨다'는 표현을 기꺼이 쓸 수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회사는 함께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조직이고 회사에서의 상하 관계는 일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주어진 역할일 뿐 '웃어른'과 '아랫사람'의 관계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게 믿기에 내 경우에는 회사에서의 대화 중 나와 인연이 있는 상급자가 화제에 오르면 그분을 모셨다는 표현을 쓰지 않기 위하여 굳이 '제가 어떤 팀에 있을 때 그분이 팀장이셨다'는 말로 넘어가려고 한다.
쓰고 보니 두 표현 모두 높임말을 사용하는 우리 문화의 특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연장자나 상급자에게 높임말을 사용하는 문화 자체는 예의 바르고 권장할 수도 있겠지만 과도하게 자신을, 그리고 때때로는 의도치 않게 상급자까지 낮추는 표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있는' 직장인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은 지킬 수 있었으면 한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1109370003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