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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Mar 07. 2023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지만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고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같은 반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항상 동네에서 함께 놀았고 특히 고등학교 때는 하교를 같이 하던 사이였다.


하루는 집에 걸어오는 길에 그 친구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다가 "네가 하는 이야기 정말 재미없으니까 그만해!"라고 말했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사실을 직접 듣는 경험은 차원이 다른 충격을 내게 안겨주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그 친구와 싸웠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그 친구도 악의 없이 내뱉었거나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었고 그 당시에 나도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지금도 어머니끼리는 친하게 지내시지만 그 친구와 나는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교로 진학했는데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마주친 기억이 이상하게도 거의 없다. 결국 나는 재미도 없지만 뒤끝도 한없이 긴 인간인 셈이다.


마음속으로야 항상 필력 넘치는 작가 아니면 최소한 댓글학원 우등생 정도는 꿈을 꾸지만 지금까지 내 브런치에 총 85편의 글을 썼는데 누구나 몰입해서 술술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 이 중 몇 편이나 될까 자문해 보면 갑자기 슬퍼진다. 그 이유는 위 일화에서 드러나듯이 저자인 내가 노잼 DNA를 어렸을 때부터 아낌없이 내보이면서 살아왔고, 그러한 암울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 내 아내는 내 인생에 굴곡이 없는 편이라 내 글을 재미있게 읽을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냉정한 예측을 했다. 당연히 발끈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발끈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내의 말이 불편한 진실이었음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였다. 보란 듯이 그 말이 틀렸다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확실해진 사실은 내가 엄청난 필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엄중한 상황 인식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바로 빠른 포기다. 재미있는 글을 써야겠다는 의무감을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공자님 말씀대로 40세가 정말 불혹(不惑)의 나이라면 그건 아마 매력적인 결과를 약속하지만 그 가능성은 낮은 선택지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이 갑자기 시트콤처럼 재미있어질 리도 없고 나의 글 쓰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또한 내가 재미있는 글을 계속해서 써낼 싹도 딱히 보이지 않으니 지금부터 그 길에 도전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내가 쓴 글이 많은 사람에게 재미있게 읽혀서 출간 제안을 받아 책을 펴내어 인세까지 받는 모습을 살짝 꿈꾸긴 했었다. 참 양심 없는 상상이었는데,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또는 써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글을 쓰는 것만큼 나의 성장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취미도 흔하지 않은 것 같다. 재미있는 글보다는 그냥 글을 앞으로도 꾸준히 쓰다 보면 노잼 인생에서도 흥미롭고 의미 있는 글이 한두 편 정도는 나올 수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오늘도 재미없는 글을 마친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dailypetcare.net/%EB%B0%98%EB%A0%A4%EA%B2%AC%EC%9D%B4%EC%95%BC%EA%B8%B0/%EC%9B%83%EA%B8%B4-%EA%B0%95%EC%95%84%EC%A7%80-%EC%A7%A4-%EB%AA%A8%EC%9D%8C-%ED%94%84%EC%82%AC%EB%A1%9C-%EA%B0%95%EC%B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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