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마치 인생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는 듯이 '인생에 중간이란 없다!'는 말을 자신 있게 내뱉고 다녔다. 어떤 상황에서든 장점과 단점을 한 개 이상 찾을 수 있는데 이 단점이 없어지거나 옅어지는 다른 상황이 되면 이전 상황에서의 장점이 사라지거나 이전에는 없었던 또 다른 단점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결국 '적절한 중간 상황'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예를 들면, 결혼 후에 아이가 없었을 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아내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많았지만 심심하기도 했는데 막상 아이가 생기니 행복하긴 하지만 시간적 여유를 누리기는 어려웠다. 양육을 상당 부분 대신해 줄 사람이 따로 있지 않은 이상, 아이가 주는 행복을 느끼면서 어느 정도의 시간 여유를 확보하는 중용의 길을 걷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생 때는 시간과 체력은 남아돌고 돈은 별로 없어 잘 놀러 다니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여행을 여러 번 갈 정도의 돈은 어떻게든 조달할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내기 어렵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인생에서 돈, 시간, 체력이 적당한 수준에서 조화를 이루는 시기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이제는 안다. 인생에 중간은 없다는 말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든 100% 만족하지 못하는 나 자신의 성향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얄팍하게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며 은근슬쩍 넘어가는 수작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적당히 괜찮은 중간인 상황에서도 나는 만족하지 못하고 '극단'이라고 치부해 버렸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항상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고 만족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 상황에 감사하면서 사는 인생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보지만, 내 성향이 확실히 그쪽이 아니었던 것일 뿐이다. 회사에서 동료들이 나를 정확히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지시를 우직하게 받아들이면서 일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계속해서 투덜투덜 대면서 어찌어찌 일하는,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이서진 같은 캐릭터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상사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 내 가치관은 현재의 삶에 순응하고 감사하면서 사는 인생을 높게 평가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열망하고, 내가 불만이 많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으며 인생에 중간은 없다는 말로 빠져나가려 했던 것 같다.
아마 좀 더 이상을 추구하는 성향도 남아 있었고 나 자신을 쉽게 바꿀 수 있을 거라 자신만만하게 믿던 시절이었다면, 앞으로는 지금까지의 삶을 회개하고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뻔한 다짐으로 이 글을 끝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옳고 그름이 아닌 다름의 관점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면서 생각의 관점이 바뀌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투덜대는 성향도 예전 같으면 없애야 할 나쁜 습성으로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나름 장점도 찾아냈다. 바로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좋아하는 점과 싫어하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으면 당장은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더라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잘 살릴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내가 만약 현재 다니는 직장의 월급이 적어서 불만이라면, 월급이 더 높은 다른 직장을 찾아보되 그 높은 월급을 받기 위해서 나의 시간이나 건강 등 다른 것들을 얼마나 포기할 수 있는지 등을 평소에 생각해 두는 것이 이직 제의가 왔을 때 결정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다시 생각해 보니 '인생에 중간은 없다.'는 말이 새삼 틀린 말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앞에서 얘기한 내용을 더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인생에 중간은 없지만) 인생은 중간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정도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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