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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well Jul 27. 2023

삶은 악보가 아니라 연주다

요즘 사무실에서 일하기 싫고 집중력을 높여야 할 상황에서 내가 유튜브를 통해 듣는 음악은 주로 베토벤 9번 교향곡, 베토벤 7번 교향곡, 쇼팽의 야상곡이나 유튜브 피아니캐스트 채널 등을 비롯한 피아노곡이다. 이렇게만 써놓으면 클래식 애호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정확하게 위에 언급한 저 목록만 가끔씩 듣기 때문에 애호가와는 거리가 멀다. 대학원 때는 주로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서 코딩이나 데이터 작업 등을 했었는데, 팬데믹 상황에서 혼자 런던에서 박사 논문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마음의 안정이 크게 필요했던 터라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고 그 당시의 습관이 지금도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베토벤 7번 교향곡은 내가 학부생이었던 2000년대 중후반에 인기 있었던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오프닝 음악이었고 쇼팽의 야상곡은 지도교수 님께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듣는 음악이라고 하셔서 들어봤다가 내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피아니캐스트는 최근에 아이가 유튜브에서 피아노를 치는 동영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대신 검색을 해주다가 알게 된 채널이다.


사실 이 세 곡에 비해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압도적으로 자주 듣는 편이다. 뒷부분에 합창이 나오기 때문에 '합창 교향곡'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곡이다. 아마 박사과정 중 잠시 한국에 들어갔을 때 이 곡을 연주하는 무료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어서 들을 만한 클래식 음악을 찾던 중 유튜브에 검색을 하게 된 것 같다. (물론 당시 공연 때는 계속 졸기만 했다.) 검색 결과 중 유난히 젊은 지휘자가 보이는 동영상이 있었는데 지휘자에 대해 찾아본 후 흥미를 느끼고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지금도 이 동영상을 꾸준히 듣는다. 참고로 이 지휘자는 오슬로 필하모닉의 지휘자인 클라우스 메켈레(Klaus Mäkelä, 핀란드 태생, 1996년생)다.


클래식 음악은 악보는 정해져 있지만 숙련된 청자가 들어보면 지휘자와 연주자마다 개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곡의 길이도 조금씩 다르고 연주곡도 다르게 느껴진다고 한다. 당장 유튜브에 'Beethoven symphony no.9'를 검색하면 내가 주로 보는 오슬로 필하모닉의 영상에 비해 조회수가 높은 연주 동영상이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정해진 악보를 가지고 이렇게도 많은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각자의 해석을 곁들여 비슷하면서도 약간씩은 다른 연주를 해낸다는 점이 참으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굳이 클래식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서 '삶은 악보가 아닌 연주다'라는 소제목이 유독 기억에 남았기 때문이다. 그 책은 바로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다. 역시 「추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해지고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수필집을 내놓은 적이 있는 제목 장인답게 제목부터 왠지 40대가 되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의 느낌을 팍팍 풍긴다. 특유의 약 빤 듯한 필력은 여전했는데 특히 '분명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반전이 이렇게 많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측불허로 내용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인생을 음악에 비유한다면 악보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단어들로 표현된 삶의 경로로, 연주는 실제 그 삶을 살아가는 개개인의 경험 정도로 볼 수 있겠다. 표면적으로 비슷한 경로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인생이 하나의 악보처럼 표현될 수 있을지 몰라도 각 개인들이 지휘자 또는 연주자가 되어 경험하고 느끼는 각자의 삶은 절대 같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삶은 악보가 아닌 연주다'라는 말은 각 개인의 삶이 품고 있는 고유성을 높게 평가하는 동시에 응원하는 말로 느껴져서 참 따뜻한 구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저자는 책에서 저 소제목을 목표가 없는 삶을 옹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붙였다. 굳이 목표가 없어도 하루하루를 자신만의 일상으로 채우며 충분히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맥락이다. 연주를 듣지 않은 채로 악보만 보고 명곡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듯이 삶의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만으로 인생을 쉽게 재단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깊은 의미를 갖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되새김질할 만한 좋은 문장을 발견한 것 같아 뿌듯한 느낌이 든다.


* 제목 사진 출처: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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